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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Feb 18. 2023

재택근무, 현실 근무, AI에 관한 생각


재택근무는 참 편하다. 예전에는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당연해서 하루에 30분 정도 운전해서 직장(혹은 법원)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고, 오히려 집에 일하면 무슨 죄진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고, 나도 새로운 직장에서의 업무를 재택으로 시작하다 보니 이제는 출근하는 것이 어색하고 너무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재택근무를 하면 일단 출퇴근 시간이 없어서 아침 준비가 훨씬 여유롭고, 옷이나 머리를 신경 쓰지 않아서 편하다. 나는 보통 7시쯤에 일어나는데,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아침에 명상을 한 뒤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이것저것 잡다한 일로 시간을 보내다가 천천히 로그인을 하면 8시 30분이 된다. 반대로 출근하는 날은 같은 시간에 일어나도, 아침 먹고 샤워하고 정장 입고 8시에 부랴부랴 출근하면 9시 직전이 되어서야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미 하루에 쓸 에너지의 1/4은 소모된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 느끼는 점은 재택근무로 인해 동료들이나 의뢰인들과의 연대가 느슨해지고, 이것이 업무 효율과 문제 해결에 적잖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치 장거리 연애 같은 답답함이 있다고나 할까? 아무리 화상으로 회의를 하고, 언제든지 전화나 채팅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것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뭔가 상대방에게 불만이나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직접 만나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그런 것 말이다. 신기하게도 이메일이나 전화로만 대했을 때는 차갑고 까칠한 것 같은 사람이,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만나면 그렇게 따뜻하고 인간적일 수가 없다.


물론 나는 MBTI로 따지면 심한 내향성(introvert)이기 때문에 굳이 사람들을 직접 대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무조건 답이라는 생각은 약간씩 변하고 있다. 한때는 재택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을(대부분 베이비 붐 세대) 속으로 구 시대적이라고 비난했는데, 이제는 그 나름대로의 논리가 어떻든 수긍이 간다. 특히 업무를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사수가 내 옆에 있어서 궁금한 것을 바로바로 물어보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아무래도 재택근무를 하면 궁금한 점이 있어도, 막 전화를 하기에는 무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시간을 잡고 하다 보면 비교적 사소한(?) 질문 같은 건 할 수 없고, 업무 외의 잡담 같은 것도 제한되는 면이 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직접 눈앞에서 마주 보고 대화한다는 그 근원적인 활동은 그 어떤 미디어나 기술을 거치더라도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변호사의 업무라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고 냉철한 텍스트나 논리, 정보만 전달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상당수는 결국 인간 대 인간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메일 혹은 전화, 심지어 화상 회의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요즘 큰 화두가 되고 있는 ChatGPT는 아무리 발전을 한다고 해도 인간이 하는 일(특히 전문적인 업무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등)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러한 전문직의 업무는 단순히 전문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전문적인 조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역할을 하는데, 책임이라는 것은 결국 그 전문가를 믿고 신뢰하는 소비자/의뢰인이 납득을 해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AI가 잘못된 조언을 해서 피해를 본 고객 입장에서 AI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임을 진다는 개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만약 정말로 인간과 겉모습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사이보그가 나온다면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그럴 날이 오기는 할까? 내 생애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나온 장애물 넘는 2족 보행 로봇이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 겨우 인간이 하는 몇 가지 복잡한 생체 운동능력을 약간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한 현재의 로봇 기술로 웨스트 월드에 나오는 사이보그처럼 사람과 사람의 사이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말투, 행동 등을 정확하게 재현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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