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pr 23. 2023

기관 본사 법무팀으로 이직하다


내가 현재 속해 있는 법무팀은 우리 기관의 하위 사업 부서 6개 중 하나를 지원하는 곳이다. 비유하자면, 삼성전자 내부에 휴대폰 사업부, 가전제품 사업부 등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우리는 그중에 휴대폰 사업부만을 지원하는 법무팀인 것이다.


그러다 작년 겨울쯤에 옆 사무실인 본사(HQ) 법무팀에서 내 현재 직급과 동일한(GS-13) 변호사 채용 공고가 났다. 공고를 낸 부서는 정부 납품 업체들의 비리 여부를 조사 및 감시하고, 납품 비리가 발각될 경우 해당 업체의 입찰 자격을 중지(suspension) 및 정지(debarment)을 하는 곳이었다. 사실 내가 정부조달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개업 변호사 시절 이와 관련된 사건을 수임하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평소에 이쪽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채용 공고가 나오자마자 별 망설임 없이 지원을 했다.


작년 말쯤 지원 서류를 보내고, 현재 보스한테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현 사무실에 근무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직한다는 말을 하기가 조금 미안하기도 했고, 어차피 안 될 가능성도 있기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 2월쯤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후반부에는 면접관 중 한 명이 '레퍼런스 체크(reference check)를 해도 되냐'라고 물어봤다. 일반적으로 레퍼런스 체크는 후보를 최종 선택하기 직전에 확인차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직 현재 보스한테는 전혀 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레퍼런스 체크할 때가 된다면 나한테 미리 알려줘서 내가 보스한테 미리 언질(heads up)을 할 수 있게 해달라'라고 했다.


그 후 약 2주쯤 뒤에, '레퍼런스 체크를 할 예정이니 보스한테 미리 언질을 주라'라고 연락이 왔다. 지원 절차가 진행되어 합격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보스에게 어떻게 이 어려운 소식을 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한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그냥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보스에게 알리는 것이 가장 깔끔할 것 같아서, 그날 바로 보스한테 전화로 '사실은 내가 본사 법무팀에 지원을 해서 인터뷰까지 봤는데, 조만간 레퍼런스 체크로 연락이 갈 수 있다'라고 얘기를 했다. 우리 보스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알려줘서 고맙다'라며 내가 했던 고민을 무색하게 했다.


그 와중에 재밌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우리 기관 소속 변호사를 대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멘토와 멘티를 지원받았는데, 나는 (당연히) 멘티로 지원을 했고 내가 선호하는 멘토로 (겁도 없이) 우리 기관 법무 최고임원(General Counsel)을 지목했었다. 며칠 뒤 멘토-멘티 매칭 결과를 받아보니, 아쉽게도 내 멘티는 GC가 아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나의 멘티는 내가 지원한 본사 법무팀 부서의 부서장이었던 것이 아닌가! (참고로 그 부서장이 인터뷰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나는 부서 조직도를 숙지했기 때문에 부서장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이것이 그냥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내가 해당 부서에 지원해서 인터뷰까지 본 것이 영향을 끼친 건지 애매한 상태에서 일주일 뒤에 첫 멘토-멘티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멘토는 처음 만남에서 바로 '자네가 우리 부서에 지원한 것을 알고 있네'라는 말로 운을 뗐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그런데 자네는 합격 직전까지 갔었어'라는 말을 듣고, 결국 나는 최종 합격이 되진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칫, 합격은 못 시켜주니, 멘토라도 해주겠다는 건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름 인터뷰도 잘 봤고, 현 보스한테 레퍼런스 체크까지 간 것으로 봐서 나는 거의 합격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식의 통보가 며칠간은 뼈아프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시 업무나 동료에 딱히 불만이 있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2주 뒤 멘토링 세션이 다시 돌아왔다. 멘토링 상담은 보통 멘토가 내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시작하는데(참고로 우리 기관 법무팀 변호사들은 전부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그날은 왠지 멘토가 들어오면서 뭔가 신나고 흥분되어 보였다. 그 멘토가 자리에 앉자마자 하는 말인 '자네 혹시 저번에 얘기한 포지션에 여전히 관심이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나는 최종 심사 결과에서 2등이었고, 1등이었던 최고 후보자가 막판에 오퍼를 수락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이미 미련을 버리고(-_-)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는데, 이렇게 다시 기회가 주어지니 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하니, '고민을 하면서 우리 부서의 부부서장(deputy) 하고 얘기를 한 번 해보면 생각이 정리될 수도 있을 걸세'라고 했다. 알았다고 한 뒤에, 부부서장에게 사정을 말하면서 면담을 요청하니 바로 다음날 아침에 화상 회의를 하자고 했다

.

약 30분으로 예정되었던 면담은 1시간을 넘겼고, 내가 궁금해하던 이런저런 질문을 가감 없이 물어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부부서장은 내 마음을 끌기 위해서 여러 가지 혜택과 좋은 경험이 있을 거라는 점을 어필했다) 이 면담이 끝난 뒤, 그날 하루 종일 고민을 하고 나니 생각이 정리됐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바로 부서장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만약 오퍼를 보내준다면 수락을 하겠다'라고 전했다.


그 후 약 2주 뒤에 정식으로 임시 오퍼(TJO)를 받았다. (참고로 연방 정부 채용에는 두 가지 정식 오퍼를 받는데 하나는 임시 오퍼인 TJO-Tentative Job Offer이고, 나머지는 최종 오퍼인 Firm Offer이다. 전자는 사전 오퍼로 신분 조사 및 지원 서류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최종 오퍼가 나온다. 최종 오퍼는 업무 시작 날짜가 제시된다) 이미 고민이 끝난 상태이기에 임시 오퍼를 수락하고, 현재 보스에게도 오퍼를 받았다는 사실과 이를 수락할 것임을 알렸다.


이렇게 나름 드라마틱한(?) 전개 끝에 이직(혹은 부서 이동)이 거의 확정이 됐다. 이제 별 무리 없으면 조만간 최종 오퍼를 받고 이동 날짜가 나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또 보스 혹은 보스의 보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이다. 내가 업무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새 부서로 간다는 점이 약간 미안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이기에 큰맘 먹고 내린 선택이었다. 앞으로 새로 시작할 업무를 위해서 관련된 책도 사서 미리 공부하고 있는데 벌써 설렌다.

작가의 이전글 로스쿨 커리어 패널리스트 참가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