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ug 12. 2023

출근의 그리움


얼마 전에 와이프가 뉴욕 여행을 간다고 해서 디시에 있는 유니언 스테이션에 데려다줄 일이 생겼다. 얼마 만에 가보는 것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최소 1년 이상 된 것 같다. 아직 목발을 짚고 다니지만, 그래도 이제 운전은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I-395를 통해 10번 출구를 나서니 바로 익숙한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내가 졸업한 로스쿨이다. 벌써 8년 전이다. 그런데도 그 주변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유니언 스테이션은 학교랑 매우 가까워서, 예전에도 종종 수업 끝나면 점심 먹으러 걸어가던 곳이었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보쟁글스라는 치킨집이 있었다. 가는 길에 노숙자가 좀 있고, 역에 들어서면 적당히 지저분한 거리에 비둘기가 걸어 다니는 곳. 익숙한 디시의 풍경이다.


역 안에 들어서니 예전보다는 가게가 많이 줄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객이 전반적으로 줄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지만 예상보다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캐리어 혹은 여행 가방을 들고 왠지 모르게 설렘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1층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주변을 조금 더 여유 있게 구경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여행객들 외에도 주변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동료들과 삼삼오오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다. 나이대는 대체로 20대 중반~30대 초반. 예상컨대 주변에 있는 로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그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일상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모습이 참 부러웠다. 특히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직장 동료와 디시에서 점심을 먹으러 외출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물론 실제로는 혼자 먹고 싶은데 억지로 끌려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서도)


나는 코로나 이후 현 기관에서 업무를 시작해서 그런지, 1년 반 이상 줄곧 재택근무를 해왔다. 가끔 출근을 하긴 했지만, 그나마 1주일에 한 번이어서 그런지 동료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 경우도 드물었다. 사실 동료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그냥 나보다 나이가 최소 10살 이상 많은 사수 및 상사라서 동료애(?) 같은 걸 느끼지도 못했다. 게다가 나와는 자라온 배경이나 인종도 다르고, 전부 자녀가 있는 부모라서 그런지 관심사나 대화 주제가 겹칠 일도 거의 없었다.


물론 재택근무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결국 나도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사람과의 교류가 그리웠나 보다. 같이 재택근무를 하는 와이프하고는 매일 서로 애정을 듬뿍 주며 꽁냥거리며 살고 있지만, 사회에서의 인간적인 교류는 뭔가 다른 점이 있다.


그리고 막상 출근을 하더라도, 내가 근무하는 곳은 디시가 아니라 디시에서 조금 떨어진 버지니아 근교에 있는 한적한 곳이다 보니, 디시와 같은 복작복작한 느낌은 없다. 디시에서 학교 다닐 적에는 항상 주변 공공기관 혹은 직장인들을 보며, '나도 언젠간 저런 사람들 틈에서 당당히 한자리 차지하며 일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꿈을 키웠는데, 막상 그럴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젠가는 공무원이 됐든, 로펌 변호사가 됐든, 디시 시내에서 출퇴근하며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한 번 옮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일하는 근무환경보다는 훨씬 불편할 것이다. 시간에 쫓기듯이 일어나 샤워를 하고 대충 아침을 먹고, 30분가량 닭장 같은 지하철을 타고, 거리에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빌딩 숲에 도착하는 생활이겠지만, 왠지 그런 생활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냥 단순한 무료함일까? 아니면 십자인대 부상으로 잠시 외출을 제대로 못해서 그냥 야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인 것일까? 아마 테니스를 한동안 치지 못해서 생긴, 인간에 대한 그리움의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디시로의 출근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물론 높은 확률로 출퇴근 몇 번 해보면 바로 고쳐질 병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교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님과 다퉜던 ssu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