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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ug 19. 2023

내가 장발이 된 이유

머리를 길러야겠다고 마음먹고 실행한 건 작년(2022년) 말 혹은 올해(2023) 초쯤이었을 것이다. 예전부터 한 번쯤은 머리를 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독한 마음을 먹고 기르기 시작해서 한동안 거지존을 거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꽤 오래전에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강마에(김명민 배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그게 2008년 때였으니 군대 갔다 와서 예비역으로 막 복학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강마에의 강단 있는 자존심과 장인의 자부심이 부러웠던 것 같다. 나도 뭔가 나만의 분야에 일가견을 이룬 뒤에 스스로의 성취에 대한 장인 정신 혹은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이 현실의 벽에(특히 부모님의 반대) 부딪쳐 장발이 되고자 하는 꿈(?)은 이루지 못한 채 그 뒤 거의 10년 동안을 투블럭으로 지냈던 것 같다. (사실 관리하기도 편했던 것이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덧 미국에 정착하여 결혼도 하고, 정부 기관에 취직하고 나니 더 이상 외모로 남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됐다. 게다가 코로나 여파로 인해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재택근무로 보내다 보니 사람들 만날 일도 적어졌고, 정기적으로 미용실 가는 것도 귀찮아졌다.


또한 장발에 대한 편견이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장발에 대한 편견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장발은 아티스트, 뮤지션, 혹은 너드(nerd)라는 편견이 없진 않다. 잘생긴 남자 영화배우나 연예인 들 중에서도 장발이 꽤 있는 편이다. 무엇보다 사실 미국은 남이 뭐라 하든 내 개성을 추구하는 것에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약간 현실적인 이유로는 조금 더 성숙해 보이기 위함이었다. 아시아계는 다른 인종보다 확실히 동안인 편이라, 대부분 나를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동안이라는 점이 칭찬 혹은 기분 좋은 것일 수 있겠지만, 미국 사회의 법조인으로서 말과 행동에 신뢰와 권위를 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려 보이는 것보단 성숙미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뜩이나 나는 우리 사무실에서는 나이가 적은 편(같이 일하는 대부분의 변호사 동료들은 최소 40대 후반~50대 중반이다)이라 그런 것도 있다. 물론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동안이 꼭 장점은 아니라고 느꼈다.


어쨌든 중간에 자르고 싶은 충동이 한두 번 있었지만, 펌을 하니까 좀 관리하기도 수월하고 주변에 어울린다는 소리도 가끔 듣다 보니 용기가 생겨 여기까지 오게 됐다. 물론 장발 남자가 취향(!)이라는 와이프의 응원 덕도 컸다.


그런데 막상 장발을 해보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 아니다. 일단 머리를 감는 것이 고역이다. 감는 건 그렇다 쳐도, 말리는 데 한참 걸리다 보니 머리를 매일 감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동안 최대 1일까지 머리를 안 감았는데(특히 무릎 수술 한 시점), 이제는 2~3일에 한 번 정도 감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외에 운동할 때 걸리적 거리는 것도 불편하다. 부상 이후로는 테니스를 칠 수 없었지만, 부상당하기 직전에도 머리가 꽤 길었는데 운동할 때마다 머리띠나 모자를 해야 하는 점에 귀찮았다.


아무튼 여러 가지 단점도 있지만, 결국 자기만족으로 기르게 되는 것 같다. 매일매일 머리가 자랄 때마다 인생 머리 길이를 갱신하고 있기 때문에, 내 평생 보지 못했던 스스로의 낯선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장발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어떤 식으로 스타일링을 할지 나름 상상해 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강마에 같은 장인 정신(혹은 똥고집)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유명인들은 종종 장발이었다. 그만큼 자기 분야에 몰두하느라 장발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때문에 반대로 나도 장발을 하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는 소박한 희망을 해본다)


왠지 강마에가 되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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