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돈을 벌려면 의사나 변호사보단, 장사가 최고.
#1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은 종종 얘기하셨다. "사무직이 최고다.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일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실내에서 일하지. 어디 현장 돌아다니다가 교통사고나 안전사고 당해서 다칠 위험도 없이, 앉아서 컴퓨터나 두들기면 되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젊은 시절 대기업에서 전기 기술자로 현장 일을 하셨던 우리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자라왔던 터라, 나는 자연스럽게도 소위 말하는 화이트칼라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2
그래서 그런진 몰랐도, 어린 시절 나는 게임을 할 때도 마법사 계열 캐릭터를 좋아했다. 내게 있어서 전사가 블루칼라였다면, 마법사는 화이트칼라였다. 칼과 갑옷이 없으면 힘을 못쓰는 전사와 달리, 마법사는 맨몸으로도 어느 정도 전투와 사냥이 가능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주문을 익히면 그 누구도 그것을 빼앗아가거나 잃어버릴 일이 없다는 영속성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좋았다.
#3
마찬가지로 대학교를 다닐 때도, 내가 습득할 수 있는 스킬에 집중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인 영어와 테니스였다. 이 두 가지를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왜냐면 이들은 마법사의 주문처럼 일단 익혀서 내 것이 되면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염려가 없었고, 나중에 맨몸으로 세상 어딘가에 던져지더라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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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학생 시절에는 영어 알바로 짭짤한 수입과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과외는 물론 영어 통번역, 외국인 가이드, 심지어는 국가적 행사 진행요원 등으로 등록금과 대학 생활비를 혼자 충당했다. (물론 부모님과 살면서 집에서 통학했기 때문에 숙박비나 식비가 거의 없었지만) 별다른 도구 없이 내가 가진 지식과 스킬을 사용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5
미국 로스쿨에 진학해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이러한 서비스 업에 대한 환상이 최고조에 달했다. 단순히 어떤 업무(task)를 끝내고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노력(efforts) 한다는 것으로도 그 시간에 대한 보수를 준다는 개념이 신선했다. 나에게는 그렇게 내 시간을 판매한다는 개념이 그 어떤 일보다 매력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 가치가 시간당 수십만 원 혹은 수백만 원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내 시간은 다른 사람의 시간보다 비싸게 팔릴 수 있다니!
#6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9년 차 변호사가 되었고, 이제는 예전만큼 서비스 업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진 않다. 왜냐면 서비스업은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일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몸값이 높은 변호사라도 직접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을 팔아야 하는 서비스업의 숙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탑 급 유명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아니라면 서비스업으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인간의 몸으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7
그러다 보니 서비스업은 결국 영업으로 귀결된다. 아무리 뛰어난 변호사 혹은 의사라도 의뢰인이나 환자가 없으면 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실력은 조금 떨어져도 환자를 유치할 수 있거나, 사건을 수임해 올 수 있는 의사나 변호사가 더 선호되기도 한다. 왜냐면 현대 사회에서 법률이나 의료 기술은 어느 정도 대체 가능한 물품(commodity)이 되었고, 한계 효용체감의 법칙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8
"돈을 벌고 싶으면 의사나 변호사가 아닌, 장사를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장사는 조금 세련된 말로 하면 사업이나 비즈니스라고 볼 수 있는데, 사업과 서비스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자거나 쉬고 있을 때도,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우리에겐 그나마 가장 친숙한 사업가인 백종원은 집에서 잠을 자거나, 가족들과 휴양지에서 보내는 시간에도 돈을 벌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그 사이 그가 고용한 직원들과 가맹점 계약을 맺은 점주들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본인에게 주어진 24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시간을 활용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9
한때 나는 고연봉을 받으며 돈을 열심히 모으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약간(아니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하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내가 일하지 않는 동안에도 돈을 벌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사업이나 투자가 아니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서비스업을 통해서 버는 돈을 투자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돈을 벌어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10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인생의 목표가, "능력 좋은 변호사가 되어 높은 연봉을 받아야지"가 아니라 "내가 번 돈을 어떻게 투자 및 운용해서 최대의 수익을 낼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은 미국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알아가고 있다. 앞으로 10년 뒤쯤에는 불로소득(passive income)으로 우리 부부가 현재 서비스업으로 버는 소득을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물론 변호사로서의 성장에도 주의를 기울이긴 하겠지만, 최우선 순위가 되진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투자금을 벌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변호사의 커리어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