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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ug 25. 2023

한국의 갑질과 묻지마 범죄

최근에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 사고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가설을 세워보았다.


#1-산업 구조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정부 및 대기업 주도의 산업이 발달했다. 특히 산업 발달 초기에는 딱히 기술이 없기 때문에 싼 노동력으로 밀어 부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 발달했다. 그러다 보니 단순하고 반복적인 생산직 자리가 상당수를 차지했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근로자의 모습은 이러한 지루하고 단순한 반복 작업을 강도 높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2-공정의 분업화

모든 공정의 분업화가 되니, 각 공정을 담당하는 사람을 쉽게 교체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구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드는 구두 장인은 쉽게 교체할 수 없겠지만, 하루 종일 밑창만 접착하는 단순 작업자는 쉽게 교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분업화는 생산직뿐만 아니라 서비스직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하게 일어났다.


#3-통제력의 상실

분업화에 따라 일정한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즉, 업무에 있어서 개인의 취향과 차이를 존중하기보다는, 사람을 전체 공정의 틀에 맞추게 된다. 남들과 똑같은 근무시간, 휴식 시간, 식사가 강요되고,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개성과 창의성을 표현할 여지가 없어진다. (구두 밑창 접착이나 나사를 조이는 일에 창의성을 발휘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4-자존감의 상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유전자와 자라온 환경에 따라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위와 같이 통제력이 상실된 환경에서 업무를 하면 할수록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게 되고, 이것은 자존감의 상실로 이어진다. 왜냐면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혹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인데, 통제력을 상실한 채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현할 기회를 놓치고, 회사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발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5-사회적 압박

회사에서 퇴근을 하더라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군중을 통제하기 위한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그 내러티브는 다름 아닌 인생의 각 단계에서 "XX를 해야 한다" 혹은 "XX를 해야 행복해진다"라는 가공의 규범이다. 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생 때는 열심히 취업 준비해서 대기업에 취업해야 하고, 직장인이 되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잘 길러서 아이가 다시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의 무한 반복이다.


#6-자원의 희소성

그러나 좋은 대학과 대기업은 한정되어 있고, 이들은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접근이 가능하다. 그리고 심지어 좋은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경쟁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비슷한 수준의 학생을 모아놨기 때문에 학점 경쟁은 더 심해진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연애·결혼 시장도 마찬가지다. 남자나 여자나 "조건 좋은" 배우자를 찾기 위한 무한 경쟁이 일어난다. 대학 및 대기업 줄 세우기, 결혼 상대 등급 표 같은 건 이러한 경쟁을 더욱 부추긴다.


#7-경쟁의 폐해

경쟁에는 언제나 탈락자가 존재한다. 특히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내뱉는 내러티브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경쟁에 낙오되는 사람들은 그나마 부족한 업무나 생활에서의 통제력을 더더욱 상실하게 된다. 자존심은 더욱 하락할 수밖에 없다.


#8-갑질의 시작

누구나 처음부터, 그리고 의식적으로 갑질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나는 갑질 안 하는데?'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갑질은 당하는 사람이 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커피를 시켰는데 내가 주문한 커피가 아니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이를 얘기하니 너무나 죄송해 하면서 새로 커피를 만들어주고, 서비스로 작은 쿠키도 받았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왠지 내가 대접받은 거 같고 고객으로서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부터는 사소한 거라도 트집 잡아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려 하게 되고, 심지어 무료로 시럽을 추가해 달라는 등 그 한계점을 시험해 보게 된다.


#9-갑질의 무한 반복

이렇게 시작된 갑질은 이제 순환하게 된다. 자신이 업무 시간에 받은 갑질을 부하 직원에게 대물림하기도 하고, 근무 외 시간에는 식당, 병원,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크고 작은 갑질을 하게 된다. 갑질은 달콤하다. 내가 평소에 일하면서 느낀 자존심 하락과 통제력 상실을 갑질을 통해 보상받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갑질을 많이 당한 사람이 그만큼 갑질도 잘한다.


#10-묻지마 범죄

갑질은 어떻게 보면, 본인의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발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의 경우에는 자존심 혹은 삶에 대한 통제력을 찾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것이 남을 해하거나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 행위라도 말이다. 이들은 범죄자가 되어 사회의 지탄을 받고, 감옥에 평생 수감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의 행위에 대한 결과가 명백하기에(즉, 본인의 선택에 의해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나니까) 그렇게나마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느끼고 싶어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동시에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회에 대한 복수의 역할도 하게 된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길게 써 놓은 것 같은데, 요약하자면 "한국의 산업 구조와 그에 따른 노동형태가 개인의 개성과 자유(혹은 통제력)를 박탈했고, 이에 따라 자존감이 하락하여 이를 보상받기 위한 행위로 갑질이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이러한 자존감 하락이 극에 달하면 이를 보상하기 위해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본인의 삶에서 잃어버린 통제력을 회복하려 한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러한 갑질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한다고 착각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과연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가는 것, 혹은 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나를 그렇게 세뇌시킨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A와 B 두 가지 선택이 있다. A라는 선택을 하면 나의 실제 행복도는 100이 되는데, 남들이 보는 나의 행복도는 50이 된다. 반면, B라는 선택을 하면 나의 실제 행복도는 50이 되는데, 남들이 보는 나의 행복도는 100이 된다.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놓고 고민을 하거나, 심지어 B를 선택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당분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내 예상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노동 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젊은 세대의 인식이 바뀌면서 점차 개인의 인권과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나아질 것 같다. 급격한 산업화를 겪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근로 환경이나 업무 문화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겪는 여러 사회 문제도 결국은 다 그 과도기에서 일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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