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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Oct 09. 2023

안정과 도전, 행복과 고통, 그 중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예전에는 아무 정부기관이나 취직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일단 취업을 하고 나니 배가 불렀던 것인지 1년 만에 부서를 옮기고, 부서를 옮긴지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른 기관 및 사기업에 이력서를 넣었다. 


현재 업무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상사도 일하기 괜찮은 편이고, 업무량도 적당하기 때문에 사실 일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은퇴할 때까지 있어도 무리가 없을 자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관 및 사기업에 지원한 건 약간 충동적이었지만, 사실 어느 정도 계획된 것이기도 하다.


이 일이 있었던 건 9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었다. 한창 미국 내에서 여야 갈등으로 의회에서 예산안 통과가 불투명했던 시기이며, 마침 2023년 회계연도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은 한편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장 내 문화 및 업무 만족도에 관한 설문 조사가 마감되는 날이기도 했다. 설문 조사는 9월 초부터 시작했는데, 높으신 분들께서는 '여러분의 설문 결과가 우리 조직을  바꿀 수 있습니다!'라며 설문 참여를 계속 독려해왔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설문지를 마쳤다. (참고로 설문지 답변은 익명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요일 일과가 끝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인사과에서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이메일이 하나 날라왔다. 그 내용은 그동안 시행되고 있던 재택근무(일주일에 최대 4일 재택근무 및 하루 출근) 정책이 내년 1월부터 주 3일 출근, 이틀 재택으로 바뀔 예정이며, 재택 날짜는 월요일과 금요일로 한정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때는 전격 재택근무를 하다가, 이제 코로나가 진정되면서 재택근무 4일이 거의 유지되는 듯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3일을 출근하라니 기분이 조갛지 않았다.


집에서 직장까지 운전해서 30분 정도 걸리는 길을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만 가면 돼서 그동안 만족하고 있었는데, 3일을 출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귀찮음이 몰려왔다. (그동안 거의 집에서만 일하다 보니 분명 게을러진 것도 있으리라) 그래서 충동적으로 집 근처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다른 기관과 사기업에 이력서를 넣었다. 


충동적이라고 하긴 했지만, 어차피 현재 직급에서 평생 머무르기엔 승진 기회가 없어서 빠르면 내년, 늦으면 후년에 이직 계획이 있던 걸 약간 앞당긴 셈이다. 지원한 포지션은 현재 업무와 거의 동일하지만, 직급이 하나 더 높은 자리였다. 사기업은 자리는 지금 업무보다는 작년 업무와 조금 더 유사성이 큰 인하우스 포지션이었다. 아무래도 사기업이다 보니 연봉은 당연히 더 높았고, 메이저급 방산 업체였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쯤은 일해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여기도 50% 출근을 해야 한다.


부모님께 통화하다가 이렇게 이력서 넣은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서는 너무 일찍, 자주 옮기는 게 아니냐며, 내가 현재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겠다고 말씀하셨다. 원래 부모님과는 논쟁하는 성격도 아니고, 다 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인 것을 알고 있기에 굳이 토를 달거나 반박하진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부모님 세대와 우리의 세대가 얼마나 다른지를 설명하고 싶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베이비붐 시절로 경제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발전하던 시기라서 어느 회사든 일단 회사에 취직을 하면 웬만해서는 윤택한 중산층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집을 구매하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97년 경제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회사에 열심히 몸 바쳐 일해도, 회사는 직원들을 필요에 따라 헌신짝 내버리듯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집도 그러한 해고의 칼바람을 피해가진 못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나 특정 직장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전문직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에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부속품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부속품이 되더라도 대체하기 어려운 혹은 불가능한 부속품이 되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 하나의 조직에 지나치게 오래 묶여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을 하는 동안에는 성장할 기회가 있지만, 익숙해지는 순간 학습 곡선은 수평에 가깝게 수렴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직원의 이직 가능성이 없다면,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인센티브를 줄 필요도 적어진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이미 이러한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에, 나는 가급적이면 기회가 올 때마다 이직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동기는 직장에 대한 불만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인 핵심 목표는 새로운 기회의 추구이다. 필요하다면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포기할 수도 있다. 직업적 안정은 대체 불가능한 스킬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공무원을 택한 이유는, 안정성보다는 공직 경험을 통한 커리어 발전과 삶의 질이 우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복은 꼭 편안하고 쉬운 길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편하지만 별로 즐겁지 않은 일(즉, 내가 성장할 기회가 적은 일)에 8시간을 소모한 뒤, 칼퇴근해서 즐거운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 언제나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행복은 업무도 즐기면서 업무가 끝난 뒤 자유 시간에 취미도 즐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업무에서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며, 내가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움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고통은 오히려 행복감을 향상시켜준다. (최근에 읽은 도파민 네이션이란 책에서 보면, 찬물 샤워 같은 적절한 수준의 고통은 오히려 평상시 도파민 레벨을 높여준다고 한다.) 즉, 무조건 안정적이고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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