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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Oct 26. 2023

찬물을 싫어하는 내가 콜드 샤워를 하는 이유

도파민의 효과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찬물로 샤워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했다. 원래 체질상 몸이 찬 편이기도 했지만, 그냥 찬물이 몸에 닿을 때의 그 선뜻함(?)이 싫었다. 그래서 평생 샤워는 따뜻한 물로만 해왔고, 찬물 샤워는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했기 때문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마 초등학교 때 수련회 갔을 때와, 논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샤워할 때마다 일부러 찬물을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도파민 네이션(Dopamine Nation)"이란 책에서 찬물로 샤워하는 것이 평상시의 도파민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중독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인 저자에 따르면,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데, 중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사례는 주로 마약 중독, 성 도착증 같은 우리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중독을 주로 다루지만, 우리들도 중독과 무관하지 않다.

나도 한때 유튜브와 레딧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특히 유튜브의 경우 Shorts라는 짧은 동영상을 끊임없이 넘기면서 마음에 드는 동영상을 찾을 때까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종종 있었는데,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도 도파민 중독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면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은 인류가 수렵 및 채집 생활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생존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즉, 도파민의 분비는 사람에게 성취감과 쾌락을 주는데,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시점은 어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치가 최고조로 올랐을 때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사냥감의 자취를 발견하면, 곧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이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사냥감 추적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를 유튜브에 비유하자면, 수많은 Shorts 동영상 중에는 정확히 무엇인진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동영상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화면을 넘겨야(swipe)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동영상이 곧 나올 거야'라는 생각이 도파민을 분비를 촉진하고, 만약 원하는 동영상이 나오면 그것을 몇 번 재생해서 본 다음에, 또다시 새로운 동영상을 찾기 위해서 화면을 끝없이 넘기는 행위가 무한 반복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도파민이 이렇게 자주 치솟는 경험을 하게 되면, 신체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위해 평상시 도파민 수치를 점차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평상시 도파민 수치가 내려가면, 기분이 우울해져서 다시 도파민을 자극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평상시 도파민 수치가 더욱 내려가고, 중독 행위는 점점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내 경우에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휴대폰에서 유튜브와 레딧 앱을 지웠다. 대신 꼭 필요한 경우에는 크롬 브라우저로 유튜브와 레딧에 접속을 했는데, 일단 앱을 지워서 접근 자체를 한 단계 건너서 번거롭게 하니, 실제 접속 시간이 훨씬 줄었다. 


그리고 콜드 샤워를 하게 됐다. 저자의 이론에 따르면 고통은 도파민 수치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즉, 의도적으로 스스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콜드 샤워 같은) 고통을 주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신체가 평소의 도파민 수치를 올린다고 한다. 평상시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면 삶에 활력이 생기고, 모든 일에 의욕적이 된다. 주변에 보면 항상 자신감에 차있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은 평상시 도파민 수치가 높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콜드 샤워를 한 지는 약 한 달이 되었는데 벌써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처음에는 정말 찬물을 틀기가 죽기보다 싫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여전히 싫지만 그 효과를 알고 있기에) 억지로라도 최소 하루에 1번 정도는 콜드 샤워를 하고 있다. 정말로 의욕이 나지 않을 때는, 미지근한 물로 시작해서 점점 찬물로 강도를 높여서 나중에는 1~2분 정도 찬물로 마무리하곤 한다.


무엇보다 내게 직접적인 효과는 하지 불안 증후군(restless leg syndrome)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지 불안 증후군은 다리가 불편하고 간질간질해서 밤에 잠을 못 이루는 병인데, 그 원인이 도파민 부족이라는 가설이 있다. 나는 이 때문에 연초부터 도파민 작용제(즉, 도파민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대체 약물)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찬물 샤워를 한 이후로, 이제는 처방약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잘 이루게 됐다. 평상시 오후만 되면 왠지 일할 의욕이 떨어지고, 몸이 늘어지는 증상도 없어졌다. 물론 유튜브나 레딧에도 더 이상 중독되지 않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자신이 휴대폰이나 SNS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하는 거나, 혹은 평상시 의욕이 없거나 무기력함이 지속된다고 생각되면, 속은 셈 치고 콜드 샤워를 한 번 일주일이라도 해보시길 추천한다. 사람마다 효과는 다르겠지만, 꼭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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