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우등생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시험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는데, 생각보다 시험이 쉬워서 공부한 게 아깝다고 생각했던 경험 말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우등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반에서 10등~15등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 종종 이런 경험을 겪은 적이 있다.
세월이 지나서 변호사가 되어 형사 사건을 맡다 보니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느낀다. 아무래도 개업 초기이다 보니 맡게 되는 사건들 하나하나에 실제 재판을 준비하듯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사건을 분석한다. 그러다 보니 사건 하나에 며칠 심지어 몇 주 내내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면 실제로 사건은 재판 전 유죄 협상(plea bargaining) 단계에서 비교적 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즉, 실제로 사건이 재판으로 갈 경우를 대비해서 가능한 모든 증인 신문과 검사 측 주장을 반박할 논지를 예상해서 시나리오를 짜곤 하는데, 막상 사건이 재판까지 가지 않고 협상이 잘 풀려서 의뢰인이 원하는 제안을 받고 유죄 인정(guilty plea)으로 쉽게 끝나버리니 한편으로는 좋지만 가끔은 허무한 경우도 있다. (마치 시험공부를 100을 했는데, 실제 시험에는 한 30 정도만 나온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시험이 끝나고 쉽다고 느낀 이유는 그만큼 열심히 제대로 준비했기 때문에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시험이라도 시험 준비를 제대로 안 한 다른 사람에게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런 걸 보면 내가 그동안 재판을 준비하면서 고민하며 보낸 시간들이 무익한 것은 아닌 거라고 믿고 싶다. 다만,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로 준비를 해야 시간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필요한 것보다 과하게 준비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경험이 쌓이면 나중엔 사건을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되는 건 나중에 경험이 늘어나면서 초심을 잃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새로운 의뢰인이 생길 때마다 의뢰인이 있음을 감사해하며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나이가 들고 모든 게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게임에 비유하자면 만렙이 되고 본인이 원하는 모든 장비를 다 갖추고 나면 더 이상 올라갈 일이 없어서 오히려 게임이 재미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게임이는 가장 재미있는 시간은 내 캐릭터가 점점 성장해 나가며 새로운 스킬을 찍고, 단계적으로 장비를 하나하나 맞춰가는 때가 아닐까?
글: 김정균 미국 변호사(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협회 회원)
Ballston Legall PLLC 대표 변호사(www.ballstonlegal.com)
Meta Law School Coach LLC 대표 코치(www.metalawcoa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