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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Sep 17. 2018

프로듀스48과 형사변호사

공정한 절차의 중요성

최근에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어느 학생이 물었다. 


"의뢰인이 유죄인 것을 알면서도 변호를 해야 하는 경우에 힘들지 않나요?" 


라고 말이다. 순간 사법체계에서 내 역할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느라 바로 시원한 답변을 못했는데, 그 일이 있은 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우연히 최근까지 열심히 본 한국방송 중에 하나인 "프로듀스 48"이 생각났다. 이번에는 프로듀스 48과 같이 소위 "국민 프로듀서"가 투표를 통해 새로운 아이돌을 탄생시키는 절차의 공정성/투명성을 사법체계에서의 피고인이 유죄판결을 받기까지의 절차적 공정성/투명성과 연결 지어서 설명해볼 예정이다. 


프로듀스 48에서 아이돌이 탄생되는 과정은 어찌 보면 배심원 재판절차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최종 투표를 통해서 아이돌 멤버를 선출하는 것처럼, 법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최종 투표(형사재판의 경우 만장일치)를 통해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프로듀스 48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감독(PD)은 재판을 진행하는 변호사의 역할과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프로듀스 48은 아이돌 선발 과정에서 감독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사고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프로듀스 48은 최종 12명의 아이돌 멤버가 선출되었다. 그런데 만약 13번째 멤버가 "프로듀스 48 진행 절차가 불공정했다"라는 주장을 근거로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진행하려 한다면, 변호사로서 어떤 점을 지적할 수 있을까? (이를 형사 사건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면, "어떤 피고인의 유죄판결이 나기까지는 어떤 절차와 규정들이 지켜져야 공정하고 정의로운 유죄 선고가 될 수 있을까?"가 될 수 있다.)


"프로듀스 48의 결과가 실제 시청자들의 의견과 100% 부합된다"라는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제(premise)가 성립되어야 한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이승기가 발표한 개인별 득표수는 실제 제작진이 이승기에게 건넌 종이에 쓰인 득표수와 동일하다

-제작진이 이승기에게 전달한 종이는 최초 득표수 집계 자부터 이승기에 가기까지 중간에 누가 바꿔치기를 하거나 혹은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최초 득표수 집계자는 시청자 문자투표/인터넷/현장투표 등 모든 투표를 실수 없이 100% 합산했다.

-시청자 문자투표수는 실제 시청자가 보낸 모든 유효투표를 집계했다. (즉, 투표를 했는데 반영되지 않은 투표가 없다)

-인터넷 투표는 개인당 주어진 특표수를 넘지 않도록 개인 식별 절차가 철저히 지켜졌다.

-현장투표는 실제로 현장에 있었던 모든 참석자가 주어진만큼의 투표권을 행사했다.


여긴 투표수에 관한 것인데 아직 편집 과정에서의 편견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방송 분량에 대해서 PD나 기타 편집자의 편견이 들어가지 않았다 혹은 각 연습생들에게 공정한 훈련 기회가 주어졌다는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최종 20인들의 방송 분량이 각자 비슷해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각 후보들에게 주어진 파트, 노래, 랩, 댄스의 수준이나 완성도가 다른 후보의 것과 거의 유사하다.

-각 트레이너들이 모든 연습생들에게 동일한 수준의 훈련과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특정 후보에 대해 지나치게 유리하거나 지나치게 불리한 편집이 없었다.


등이 있다. 물론 이들 전제는 극히 일부이며, 자세하게 들어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이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과정도 실제로는 잘못된 가능성이 수없이도 존재한다. 


형사재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행위를 유죄로 판단한다는 것, 즉 국가가 그의 신체적 자유(심지어는 생명까지도)를 박탈하려면 법적으로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의 입증(beyond reasonable doubt)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형사 변호사의 역할이 규정된다. 즉, 검사가 의뢰인의 유죄를 법적으로 요구된 수준으로 입증했는지, 그리고 그 절차상의 문제는 없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즉, 쉽게 말하면, 형사 변론은 "내 의뢰인이 실제 유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들이 참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증인이 있으면, 증인이 실제로 사건을 목격했는지, 얼마나 제대로 봤는지, 기억 인출 과정에서 오류는 없는지? 증인이 거짓말할 이유나 동기는 없는지? 

-경찰의 체포 및 심문이 있었다면, 최초 체포 사유는 정당한가? 체포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대응은 없었는지? 체포 이후 심문 전 미란다 원칙이 제대로 고지됐는지? 피고인이 권리를 포기했다면 그 결정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현장에서 발견한 증거가 있다면? 예를 들어, 지문이 발견되었다면? 지문 채취는 매뉴얼에 따라 이루어졌는가? 채취한 당사자는 충분한 경험과 훈련을 받았는가? 지문 분석을 담당한 사람은 전문성이 있는가? 

-비디오가 있다면? 비디오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는가? 비디오에 찍힌 날짜와 시간은 실제 시간과 동일한가? 그렇다면 어떻게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비디오의 조명과 해상도는 충분한가? 비디오 채출 과정부터 법원 증거 채택까지 누구의 손을 거쳤고 중간에 조작된 부분은 없는가?

-배심원 재판이 진행된다면, 배심원은 편견이 없는가? 법정에서 제시된 증거 외에 다른 증거를 고려하진 않았나? 배심원이 다른 배심원의 강압이나 압력에 의해서 다수의견을 수용한 건 아닌가? 판사의 배심원 설시문은 제대로 주어졌고, 배심원들에 제대로 이해했는가? 


이들 전제들도 마찬가지로 극히 일부에 해당된다. 이런 절차들을 모두 일일이 점검하는 것이 형사 변호사의 역할이다. 그러나 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나 조사관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종종 실수를 한다. 결국 형사 변호사는 이런 일이 없도록 방지하고,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를 활용해서 최대한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는 적게는 감형부터 크게는 무죄판결 등 여러 가지 결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의뢰인이 유죄인 것을 알면서도 변호를 해야 하는 경우에 힘들지 않나요?" 


답은 "힘들지 않다" 왜냐면, 모든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무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뢰인이 유죄이든 무죄이든 변호인으로부터 최고의 대리(representation)를 받을 권리가 있다. 누군가의 유무죄는 결국 배심원에게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에 유무죄를 가늠하는 데를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보단 의뢰인이 무죄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변호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에게 저 질문을 했던 학생이 이 글을 보고 납득을 했길 바란다.


글: 김정균 미국 변호사 (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

Ballston Legal PLLC 대표 변호사 (www.ballstonlegal.com)

Meta Law School Coach LLC 대표 코치 (www.metalawcoa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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