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Jan 17. 2019

배고픈 변호사가 굶주린 사자보다 무서울까.

정직의 가치.

Hungry Lion? Lawyer? (source: https://pixabay.com/en/tie-classical-costume-shirt-lion-1140435)

"배고픈 변호사가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그만큼 변호사가 돈에 환장하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의미인데,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종종 돈의 유혹을 받다 보면 그런 말이 정말 사실일 수 있겠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작년 중순쯤 개업한 지 몇 주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의뢰인도 거의 없었던 때라서 한창 유지비용으로 돈을 꼬라박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주 정부(정확히는 페어팩스 카운티 정부)에서 제 로펌 앞으로 발행한 수표가 도착했더군요. 금액은 자그마치 1113불. 당시 개업 초기 자금줄의 압박을 받고 있던 저에게는 혹할 만큼 큰 금액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당시 페어팩스 카운티 국선전담(court appointed) 형사 변호사로 등록이 되어 있었던 때이긴 했지만, 아직 종결된 사건도 없었기에 받을 돈은 전혀 없었고, 수표 지급 사유도 제가 하는 형사 사건 관련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아동복지수당"이라고 나왔습니다. (물론 저희 부부 사이에 아직 자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이 수표를 내가 환전해도 되는가 고민을 했고, 결국 직접 발행처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한 30분 넘게 운전해서 담당자를 찾아갔습니다. (페어팩스 재무부, Treasurer's Office) 가서, "왠지 내가 받을 돈이 아닌데 잘못 온 것 같다. 정확히 왜 그런 건지 확인 좀 해달라"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알겠다고 하고 제 이름과 연락처를 받은 후에 수표를 다시 가져갔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찾아와서 확인해서 고맙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발행한 사람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환전했을 텐데"라고 칭찬(?)을 해줬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양심상 그 돈이 다른 누군가에 갔어야 하는 돈인데 저한테 온 것이고, 만약 정말 누군가가 실수로 그랬다면 나중에 상사한테 얼마나 많은 문책을 받을지 상상이 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냥 돈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받을 양육비였기 때문에 그 돈을 챙긴다는 것이 더 양심에 찔렸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수표가 계속 손에 있게 되면 갈수록 유혹을 느낄 것 같아 자수(?)하여 수표를 반납한 것이죠. 아무튼 담당자는 수표를 받아 들고 나중에 연락 주겠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은 한 달 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듣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비슷한 금액으로 동일한 내용으로 또 다른 수표가 제 이름 앞으로 도착했기 때문이죠! 제가 반납했던 수표와 정확하게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식별번호만 다르고 나머지 금액이나 사유는 거의 똑같았죠. 이 두 번째 수표를 받아 들고 저는 정말 고민했습니다. '이미 내가 실수를 한 번 지적해 줬으니 두 번째는 내가 가져도 괜찮겠지'라는 생각부터 '사실 뭐 눈먼 돈이니 아무도 모를 거야' 등등 참으로 나쁜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고민 끝에 결론은 '괜히 초반부터 긁어 부스럼 만들고, 불안에 떨면서까지 욕심부릴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그 수표는 환전되지 않은 채로 제 로펌 파일철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수표는 발행 후 180일이 지나면 효력이 상실되는데, 잊고 있었다가 이 글을 쓰기 며칠 전에 만료가 되었더군요. 덕분에 이제는 유혹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돈이 주인을 제대로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는 양심과 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될 때마다, 이 수표를 꺼내서 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최소 30년 이상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이런 유혹에 빠질 기회가 많이 생길 텐데 초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다행인 것은 그 이후에 감사하게도 의뢰인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1100불에 양심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금액이 커지면 또 다르겠지만,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면서 양심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정균 변호사 (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

대표 변호사, Ballston Legal PLLC (www.ballstonlegal.com)

대표 코치, Meta Law School Coach LLC (www.metalawcoach.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