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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Feb 15. 2019

제가 법원에 가는 이유

<Source: Karen Neoh, https://www.flickr.com/photos/kneoh/14931652922>

제가 한국에서 살 때는 (다행히도) 법원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로스쿨을 다니고 졸업 후 현지

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법원은 시골 동네 법원부터 연방대법원까지 여기저기 참 많이도 가봤습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그리고 학문적 호기심이 워낙 강해서 어디를 가든 그 동네에 있는 법원과 대학은 꼭 보고 오는 편입니다.


제가 딱히 변호사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미국 법원은 갈 때마다 뭔가 특별함이 느껴집니다. 대성당에 가보셨나요?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굳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 성스러운 분위기와 엄숙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죠. 제가 법정에서 느끼는 감정도 거의 비슷합니다. 성당 같이 압도적인 느낌이 들진 않지만, 정의가 실현되는 일종의 법적 성역(sanctuary)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재판이나 심리가 없어도 종종 법원에 들러서 평상복 차림으로 일반 방청객인 것처럼 참관을 합니다. 그러면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법정을 드나들며 편하게 사건들을 관람(?)할 수 있죠. 제가 자주 가는 페어팩스 카운티 법원은 하루에도 수백 건의 사건이 처리되는, 버지니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곳이라 갈 때마다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사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다른 변호사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쉐도우 파이팅을 해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리에는 나라면 어떻게 답변했을까. 저 변호사는 왜 objection을 안 했을까. 저 주장은 정말 흥미로운데? 판사가 지루해 보이네, 저 증인의 진술은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데' 등등 참 많은 관찰을 하면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흔히 재판을 테니스에 비유하곤 하는데, 테니스로 따지면 매일매일 다양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만약 매일 재판을 참관하고 돈 받는 일이 있다면 제가 적격이겠죠. 하루 종일 법정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종종 재판이 고조되면 점심시간을 넘기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진행이 되는데 그걸 보고 있는 저도 화장실 가고 싶은 욕구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리를 뜨지 못하죠.


재판을 방청할 때마다 자세히 노트를 적습니다. 판사의 판결요지, 변호사(검사)의 변론 스타일, 경찰관의 진술, 변호사가 언급하는 판례 등등 기록을 해둔 뒤에 나중에 저널에 적습니다. 행여나 제가 맡은 사건에 큰 도움이 될 정보이기 때문이죠. 저는 감동적인 연설이나 기가 막힌 변론을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재주는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것을 받아들여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하죠. :)


아무튼 저는 법정에 갈 때마다 행복합니다. 재판을 하러 갈 때나 혹은 단순히 방청하러 갈 때나 모두 말이죠. 전자는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의뢰인을 도와주기 위해서고, 후자는 더 나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법원에 거의 매일같이 드나드는 형사 변호사의 삶을 택한 것이 신의한 수였던 것 같습니다.


글: 김정균 변호사 (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

https://www.ballstonlegal.com

https://www.metalawcoa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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