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형사제도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거의 30년을 살다가, 미국 생활은 이제 7년째(변호사로는 4년째)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한국 뉴스를 보면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많습니다. 특히 이번 로버트 할리 사건을 보면서 느낀 점을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로버트 할리(한국 이름은 하일)는 미국인 태생 귀화 한국인으로,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수한 사투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유명인입니다. 말투는 영락없는 옆집 동네 아저씨지만, 알고 보면 미국 변호사로 국내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마약 투여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어 조사를 받고 있어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언론 보도 및 대중의 반응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몇 가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1. 마약 소지 vs. 마약 투여
미국에서 형사 변호사로 활동하다 보니 아무래도 마약 관련 사건을 많이 맡게 됩니다. 느낀 점은 미국은 마약 소지(possession)를 주로 처벌하는 반면, 한국은 마약 사용(use)에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도 소지 및 판매를 처벌하겠지만, 미디어를 보면 누가 마약을 사용했다 안 했다 여부가 주로 초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로버트 할리 사건도 전부 "사용 여부"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사용했다면 소지한 것도 마찬가지 아니냐?라고 하실 분이 있겠지만, 이는 경찰의 증거 수집 및 수사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마약을 사용했다는 증거만으로 누군가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론상 대마초를 폈다면 대마초 물질을 폐에 '소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소지품 검사에서 대마초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대마초 소지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한국은 그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한국 변호사가 아니라 단정할 수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 제가 느낀 부분입니다)
2. 구속 수사?
로버트 할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그는 불구속 기소 상태입니다. 그런데 기존 유사 사건을 보면, 한국은 오히려 미국보다 구속 수사가 더 보편화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로버트 할리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최초에 체포될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전과가 없는 (이전 기소 기록은 있지만) 초범이기 때문에 단순히 법원 출두 명령서(summons)를 받고, 정해진 날짜에 법원에 출석만 하면 됐을 것입니다. 아마 한국과 미국의 형사소송법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 피고인의 구속/불구속의 여부를 가늠하는 주된 요소는 (1) 피고인의 도주 위협이 있는가와 (2) 피고인이 사회 혹은 본인에게 위해가 될 수 있는 존재인가입니다. 물론 다른 요소도 있긴 하지만,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위 (1) 번 같은 경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것 같지만, 한국은 (2) 번보다는 '증거인멸의 가능성'에 초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아마 미국과 한국의 경찰 수사에 대한 문화 차이인 것 같습니다. (이 '증거인멸'이라는 부분은 아래에서 더 설명해볼 예정입니다) 아무튼 미국 법 기준으로 따지면, 로버트 할리는 도주 위험이 적으며 사회적 위험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구속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구속되는 경우는 보통 폭력 전과가 있거나, 법원 출석에 불응한 기록이 있는 경우, 혹은 마약을 대량으로 유통한 혐의가 있는 경우입니다.
3. 증거 인멸?
이 '증거 인멸'이란 개념이 저에게는 흥미롭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검경의 수사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미국의 경우 형사 사건의 피고인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서 구속 수사한다'라는 개념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형사 사건의 경우 이미 증거는 기소/체포 전에 다 수집이 완료되었고, 일단 기소 이후에는 수정헌법 6조에 따라서 변호사의 동의 혹은 법원의 명령 없이는 조서 작성이나 증거채취를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실질적으로 기소 이후에 경찰이 해당 사건에 대한 증거를 보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추가되는 증거가 있다면, 기존에 수거한 증거를 분석한 보고서 정도가 있겠죠.
그런데 한국은 다른 것 같습니다. 왠지 기소되는 순간부터 검경의 증거수집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특히 피고인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는 과정에서 포토라인에 서서 플래시 세례를 받고, 범죄에 대한 심경을 밝히는 것은 이젠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입니다. (그 와중에 무죄추정의 원칙은 전혀 적용되지 않아 보입니다.) 조사 중 작성된 조서는 재판에 중요한 증거로 사용되겠죠. 아마 검찰 측에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얘기하는 건, 기소 이후 로버트 할리가 집에 돌아가서 마약 사용의 증거(예를 들어, 주사기나 저울 등)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미국이었다면 기소 전 구속영장/수색영장 발급 및 집행 과정에서 이미 해당 증거를 파악하고 수집했어야 하고 만약 운 좋게(?)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에 증거를 없앴다면, 그리고 증거를 인멸한 증거(!)가 없다면, 그건 경찰의 잘못이겠죠.
맺는말
사실 이 글의 목적은 한국의 형사제도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형사 사건을 대리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다 보니 여러 가지 다른 점이 보이고, 미국이었으면 어떻게 진행됐을까 하는 지적 호기심도 있었기에 나름대로 한번 차이점과 제 생각을 적어 본 것이죠. 물론 어느 한쪽의 체제가 맞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각각의 문화와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체제가 굳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형사제도의 단점을 꼽자면 책으로 몇 권을 써도 모자랄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과 국가의 치안을 유지하는 일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점을 찾는다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문화든지 이는 항상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글: 김정균 변호사 (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
대표 변호사, Ballston Legal PLLC (http://www.ballstonlegal.com)
대표 코치, Meta Law School Coach LLC (http://www.metalawcoa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