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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Apr 25. 2019

변호사는 걱정인형

프로 걱정러의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

https://www.youtube.com/watch?v=de2wpnVoL-A


예전에 "걱정인형"이라는 개념을 보험사 광고로 활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과테말라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하나의 풍습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의외로 기발한 아이디어인 것이, "걱정"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실체화하고 이것을 다른 대상물에 투영하여 더 이상 막연한 개념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행동인 것이죠.


그런데 갈수록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제 역할 중에 하나가 이 "걱정인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형사사건처럼 개인의 인생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 관여하게 되면, 돈 받고 남의 걱정을 대신해주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중대한 사건을 앞에 두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세상이 자신에게 점점 옥죄어 오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해당 사건의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경우, 본인의 한정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더라도 너무나 많은 변수 때문에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보니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기야는 하루 종일 걱정에 사로 잡혀서 일이나 공부가 손에 안 잡히고 심지어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변호사의 역할은 이 걱정을 덜어주는 한편, 의뢰인 대신 걱정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뢰인이 하는 걱정과 다른 점은, 상당수의 변수는 변호사가 생각하는 예측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그 변수들 간의 조합이나 상호작용에 따라 어떤 식으로 한정된 결과들이 나올지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변호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결과가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변호사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변호사는 직업상 필연적으로 걱정을 안고 살아가야 하고, 이를 잘 다루어야 합니다. 소위 "프로 걱정러"(professional worrier, 공교롭게도 warrior 하고 발음과 철자가 비슷하네요)라고 하죠. 만약 변호사가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 말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동시에 의뢰인의 사건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결과가 잘못될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변호사 활동 초기에는 사건에 대한 지나친 걱정으로 하루 종일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악몽을 꾸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다행히 축복인지 언제나 잠은 항상 잘 잡니다) 요새도 가끔 공판 전날 밤에 꿈을 꾸는데, 대부분의 꿈 내용은 재판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재판이 산으로 간다든지 혹은 의뢰인이 감옥에 간다든지 하는 내용들입니다. :( 다행히 꿈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혹은 그러한 꿈 때문에 더 열심히 준비를 하게 되는 건지,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knock on wood!)


그래도 프로 걱정러 4년 차라서 그런지 이제는 걱정을 대하는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우선,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명상을 꾸준히 하기 전까지는 명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한창 미국에서 "Mindfulness" (마음 챙김)이 유행할 때 한 번 속는 셈 치고 Calm이라는 앱을 유료 결제해서 사용해봤는데 그 효과가 너무 좋았습니다.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중압감을 받는 일을 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다음에는 종종 전념할 수 있는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테니스를 즐긴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지인들과 테니스 약속을 잡아 놓으면 며칠 전부터 테니스 칠 생각만으로 마음이 들뜨고 룰루랄라 합니다. 의뢰인이 각종 사고를 치고, 법원에서 판검사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아도 테니스 칠 생각만 하면 싱글벙글하게 되는 마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가족이 있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20~30분 거리인 법원으로 운전하면서 종종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는데, 가끔 푸념도 하고 안부도 묻고 하노라면 긴장도 풀리고 마음이 따뜻해져 큰 용기를 얻곤 합니다. 또한 저녁에는 아내도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서로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하면서 서로를 보듬어 주며 하루에 있었던 힘든 일이라든지 좋았던 일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피로와 스트레스를 잊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끔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간다든지, 주변 산책을 한다든지, 혹은 같이 운동하게 되면 금상첨화겠죠.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 걱정을 해결하시나요?


글: 김정균 미국 변호사(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

대표 변호사, Ballston Legal PLLC (http://www.ballstonlegal.com)

대표 코치, Meta Law School Coach LLC (http://www.metalawcoa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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