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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May 05. 2019

개업 1년, 부상 그리고 휴식

새옹지마와 전화위복

지난 5월 1일은 개업을 한지 만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개업 1년 기념 자축한 날이기보다는 난생처음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며칠 전 테니스 시합을 하다가 아킬레스 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겪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이었던 그날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오전에는 로스쿨 졸업 동기 부부 및 지인들과 DC 시내에서 브런치를 즐긴 후에, 오후 3시에 예정된 알링턴 지역 테니스 리그를 치르러 펜타곤 근처 공원 테니스 장으로 향했다. 햇살이 가득한 따뜻한 초봄의 날씨여서 테니스를 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내 복식 파트너는 백발이 희끗희끗한 아버지 뻘 나이의 백인 아저씨였는데, 처음 경기 호흡을 맞춰보는 것이라 살짝 긴장되었다. 상대방은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이었는데, 둘 다 서브라든지 스트로크가 준수해서 웜업 하면서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시작해보니 의외로 상대방의 실수가 잦았고, 우리는 파워보다는 기교와 끈기로 경기를 우세하게 풀어가다 보니 첫 세트를 6대 3이라는 비교적 무난한 점수로 이기게 되었다. 뭔가 너무 지나치게 잘 풀린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것이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2세트의 첫 포인트는 상대방의 서브였다. 우리 편 파트너가 짧은 리턴을 했는데, 상대방 전위가 드롭샷을 했다. 나는 미리 드롭샷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 공을 따라가기 위해 오른발을 크게 딛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왼쪽 종아리를 짧게 때린 듯한 느낌이 나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바로 라켓을 놓고 넘어지는 바람에 추가 부상은 없었지만, 불안한 느낌이 머리를 스쳐가 바로 신발을 벗고 다리를 확인했다. 외적 부상은 없었지만 어딘가가 인대가 끊어진 듯한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일어나 발을 디뎌보려는 순간 힘이 빠지며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바로 urgent care (우리나라로 치면 24시간 가정의학과와 비슷)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아킬레스 건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를 진료했던 의사가 잘 아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있고, 그 사람이 이런 부상 전문 수술로는 지역에서 유명한 전문가라고 했다. 바로 다음날 월요일 진료 예약을 해서 당일 검사를 받고, 이틀 뒤 수요일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미국은 스포츠 저변이 확대되어서 그런지 이런 종류의 부상은 치료 절차가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사 말로는 걷기까지는 수술 후 최소 2~3개월, 운동을 하기까지는 최소 6개월이 걸릴 거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수요일이 바로 개업한 지 1년이 되는 5월 1일이었다.


살면서 평생 목발에 의지해서 걸어본 적이 없었기에, 앞으로 수개월간 삶의 많은 부분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개업 변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특히 형사 변호사는 거의 매일 같이 공판과 의뢰인 접견 때문에 법원과 구치소를 들락날락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사건 수를 줄이고 재활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국선 사건을 받고 있는 법원(페어팩스 및 알링턴)에 연락을 해서 잠시 추가 국선 사건으로부터 휴식계를 낸 것이다.


막 개업 1년 차가 되었을 시점이라 그런지 어느 정도 사무실 운영이라든지 사건 수임이 조금씩 손에 익어서 이제 본격적으로 수임 규모를 늘리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조금 아쉽게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침 휴식이 필요했던 차에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덕분에 매일매일 눈 앞에 닥친 사건과 의뢰인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는 데에 집중하기보다는 조금 더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최소 몇 개월간 느긋하게 고민해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동시에 독서라든지 저술활동을 할 여유도 좀 생겼다. 한 동안 시작만 하고 마무리 짓지 못해 책도 며칠 만에 끝냈고, 무기한 연장되었던 로스쿨 관련 책 집필 작업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변호사로서 어떤 전문성을 발달시킬지, 업무 외에 어떤 인생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세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6개월이란 시간은 짧지 않지만 30대 중반인 나는 최소 살아온 만큼, 혹은 그 이상 변호사로서 활동할 날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기 긴 시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당분간 테니스를 즐기지 못해서 오는 아쉬움과 거동이 불편한 데서 오는 불만을 이제는 상당수 덜고, 남은 시간과 여유를 보다 긍정적으로 활용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었다. 어차피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생각하기에 따라 이번 기회가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다만 당분간 다리가 불편한 내 뒷바라지를 도맡아줄 아내에게 미안하고, 타국 만리에서 아들의 부상 소식에 안타까워할 부모님께 죄스러울 뿐이다. 그만큼 이 시간과 기회를 최대한 유용하게 활용하고, 가능한 한 빨리 부상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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