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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Jan 26. 2020

변호사들이 탐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

한정된 자원과 조언의 가치

미국에는 변호사 관련 농담이 많다. 주로 변호사의 지나친 탐욕과 물질 만능주의를 풍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농담이 아니더라도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변호사들은 (특히 다른 전문직종에 비해) 돈에 죽고 사는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나도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왜 그럴까?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변호사가 되고 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곤 한다.


최근에 있었던 두 가지 에피소드.


1.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학생 자녀를 둔 어느 부모였는데, 자녀가 기소를 당해서 상담을 받고자 했다. A라는 다른 변호사로부터 내 소개를 받았다고 했는데, 사실 A라는 분이 누군지 잘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래도 일단 소개를 받으면 수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기꺼이 내 일정을 조정하면서도 대면 상담을 잡았다. 30분으로 예상했던 상담은 거의 1시간 30까지 넘었다. 사실 웬만해서는 아무리 길어도 1시간은 넘기지 않는데, 워낙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건이고, 게다가 왠지 수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해서 성심성의껏 가능한 모든 조언과 사건 진행방향, 방어전략까지 알려줬다. 마지막에 수임료를 알려주고, 며칠 뒤에 계약서에 서명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며칠 뒤에 법원 기록을 확인해보니 다른 변호사가 선임계를 제출했더라. 


2. 마찬가지로 주말에 급한 전화가 왔다. 연휴였고 웬만해서는 주말에 전화를 잘 안 받는데, 부재중 전화도 와있었고, 왠지 다급한 전화일 것 같아서 받았더니, 위와 비슷한 경우였다. 자녀가 긴급체포되었는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무작정 검색을 해서 내 번호를 찾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사정이 딱하기도 해서 형사 절차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줬는데, 그것만 해도 30분이 넘었다. 다음날이 arraignment 였는데, 마침 내가 법원에 출석할 일이 있어서 볼일을 마치고 오는 길에 법원 로비에서 해당 부모님을 만나서 여러 가지 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줬다. 변호사 수임 의사가 보여서 내 수임료를 알려주고, 수임절차를 알려줬다. 마찬가지로 다음 주에 변호사 선임 여부를 물어봤는데 고려 중이라고 했다. 며칠 뒤에 법원 기록을 확인해보니 다른 변호사를 고용했더라.


사실은 내가 대처를 잘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무료 상담을 해준 사람은 내가 아닌가. 물론 그 사람들은 나름 사정이 급하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연락을 했을 테니 인정상 답변을 해준 것이긴 한데,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가끔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돈 내시면 상담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 매정한 것 같기도 해서 고민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변호사의 자원은 결국 시간이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실질적으로는 8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자원은 한정되어있다. 게다가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데는 1분도 안 걸릴 도 있지만, 그 답변을 하기까지 필요한 지식을 축적하고 경험을 쌓는 데는 수년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까짓 짧은 답변 하나 해주는데 얼마나 힘들다고 그렇게 돈돈 거리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걸 알기에 내가 답변을 아는 질문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조건반사적으로 답변이 튀어나온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나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먹는 것이 아닐까?


항상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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