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h Gray Oct 08. 2017

일요일의 딜레마

구해줘, 아니 그냥 내버려둬 줘

괜한 상념에 시달리기 싫어 평일엔 죽도록 일을 한다. 그렇게 하루 동안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려야 눕자마자 잠들 수 있다. 잠들고 나서도 꿈꾸지 않고 깨끗하게 잘 수 있고, 중간에 깨지 않고 계속 잘 수 있다.

워커홀릭인 건지, 열정이 넘치는 건지... 즐기면서 일하는 보기 드문 모범 동료인 건지, 괜히 열심히 일해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만 주는 민폐 동료인 건지... 나도 모르겠고, 내 주변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 차마 알고 싶지는 않다.


나는 감정에 젖고 싶지 않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감정들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나의 업무 엔진을 뜨겁게 달궈주고 윤활제가 되어줄 긍정적 감정들이 아닌 이상, 그리하여 쉼 없이 가동된 엔진 덕에 지쳐 쓰러져 잠들 내 몸을 위해, 여러 상념들을 불러일으킬 부질없는 감정들은 정중히 거절한다. 이렇게 거절해도 감정들은 끊임없이 나를 공격하니까, 더욱더 정중히 거절한다. 감정들의 공격으로부터 내 심장을 지켜야만 나의 엔진은 밤새 단잠을 자고 차갑게 냉각되어 다음 날, 다시 뜨겁게 풀가동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주말이다.


한 주의 피로가 최대치로 쌓인 금요일, 나는 불잠을 잔다. 그리하여 다음 날, 지난 5일간의 과로도에 따라 낮 12시에서 오후 5시 사이에 깬 나는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며 저녁 시간을 만끽하고, 새벽 1~2시쯤 다시 잠든다. 이렇게 모든 피로를 제거하고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그때부터 긴긴 시간과의 싸움, 넘치는 체력과의 싸움, 닿을 수 없는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침대를 박차고 방 밖으로 나가 어디든 가면 되는데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나는 그 우울과 무기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짓눌려 상념이란 압정으로 침대에 박혀버린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시간의 흐름과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일요일 하루를 보낸다.




구해줘.  


사실, 주말의 나는 할 게 많았다. 아니,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또, 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밀린 청소와 빨래도 해야 했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날씨와 기후, 계절에(패션 트렌드, 라기보다는 ;;) 알맞은 옷과 신발, 액세서리들도 사고 싶었고(사야 했고=겉모습이라도 멀끔하게 하고 다녀야 덜 구질구질해 보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하지만 언제나 마음뿐인 적이 더 많았), 지난날(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던, 남자와 연애를 했던 날들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향수와 새로 생겨난 맛집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싶기도 했다. 헤어숍에 가서 큰 변화 없더라도, 은근히 더 깔끔해 보이도록 머리를 좀 다듬고 싶기도 했고(다듬어야 했고), 혼자라도 좋으니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하거나 통유리창이 있는 커피숍에 앉아 온종일 멍하니 무념에 잠기고도 싶었다. 꽤 완성도가 높다는,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가 있을 때는 적절한 시간(일반적으로 적절한 시간이란 '비일반적인 시간=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을 말함)에 혼자 영화관에 가 영화를 보고 싶기도 했다. 적당히 나를 알고,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며, 적절한 추임새와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와 마주 보고 앉아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고도 싶었다.




하지만 귀찮아.


일주일에 한 번은 해야지, 싶은 청소와 빨래는 결국 일요일 밤부터 시작되어 월요일 아침에 세탁기 속에서 빨래를 꺼내 건조대에 넌 뒤 출근(+지각)하며 끝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온갖 옷들을 그날그날의 기온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레이어드 해 입은 후 '마침 다음 주에 출장이 있으니 나간 김에 끝나고 옷도 사야지.' 다짐한 후 밀린 업무 처리하듯 옷을 산다. 평일 밤 전투적으로 앱 쇼핑을 한 후, 직장에서 쉼 없이 택배를 받기도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나 가고 싶은 레스토랑은 '다음번 회식엔 ##에 가서 @@을 먹어보자고 해야지.' 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지저분한 헤어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뇌에 휴식을 주고,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멍 때리기'조차도 곧 다가올 평일 밤의 일과로 미뤄(?) 버리고, 어차피 일어날 수도 없는 이른 아침이나 제 발로 기어 나가 지지 않는 늦은 밤엔 영화를 포기하고 '어설픈 영화보다 검증된 드라마 몰아보기가 낫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 역시 다음 주말로 미룬다. 적당히 나를 알고,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며, 적절한 추임새와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는 세상에 몇 있지도 않은데 대부분 육아로 바쁘다. 오늘 보낸 카톡에 대한 답이  주 후에 오기도 한다. 어설프게 누군가를 만났다간 겉도는 대화에 괜히 어색하고,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 세상이라 어설픈 만남은 심신의 로를 배가하고 외로움을 확인 사살한 후, 돈만 쓰게 할 뿐. 그럴 바엔 그 돈으로 집에서 TV를 보며 혼밥에 혼술을 하는 게 훨씬 낫다. 친구가 있어도 친구를 만나지 않는 이유다.




그러니 나를 그냥 내버려둬 줘. 아니 나 그냥 여기 혼자 있을게.


그리하여 나는 그냥 상념이라는 압정에 심장이 뚫려 침대에 박혀있는 편을 택한다. 지나온 날들의 기억들-어린 시절 부모님께 억울하게 혼났던 일, 오랜 친구와 서서히 멀어진 날들, 뜨거웠던 연애가 차갑게 끝났던 순간, 바빴기에 흘려들을 수 있었던 직장 상사의 폭언, 무심코 던진 나의 말에 안색이 돌변했던 직장 동료, 몽롱한 상태로 습관적으로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날 뻔했던 순간, 간발의 차로 파리로 떠나는 비행기를 놓칠 뻔했던 순간 등에 거의 속수무책으로 뒤늦은 공격을 당한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뭇매를 맞는다.

이 시간들은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나는 나를 그냥 내버려둔다. 이 사실이 또 나를 괴롭힌다.




'대체 나는 왜 이럴까?'


정신과 의사라도 만나야 할 것 같지만 '가장 좋은 정신과 의사는 친구'라는데 나는 결국 친구를 돈 주고 사야 하는 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과연 나는 지불한 돈의 액수만큼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돈을 받으면 나를 위해 기꺼이 헌신해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과연 세상에 있기나 할까?

생각은 또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지막 결국 '대체 나는 왜 이럴까?'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결국엔 월요일을 기다린다.


역시 나에겐 일이 최고야. 괜한 생각 말고 월요일이 되면 매뉴얼대로 업무 처리나 하자. 제멋대로 날뛰는 정신과 감정은 바쁜 스케줄과 피곤한 몸으로 다스려야지. 허둥지둥 일요일 밤의 청소를 마무리하고 어서 월요일이 왔으면, 간절히 바라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이틀간 내 안의 모든 잠은 소진된 상태로 나의 온몸은 생생히 살아있다. 이게 두려워 금요일 오후부터는 커피 한잔 마시지를 못한다. 평일 내내 먹었던 믹스커피를 떨쳐내고, 주말에는 멋들어지게 라떼 한잔 하고 싶지만 현실은 불면이 두려워 과일주스와 타협하고 만다.  


결국 월요일 아침 해 뜰 무렵 잠이 들고 잔뜩 피곤한 상태로 일어나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한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아! 내일 입을 옷! 을 위해 다급히 되들어가 세탁기를 열어 빨래를 널며 지각을 헤아리는 나는 다시,




주말을 기다린다. 금요일을 기다리고, 토요일을 기다리고, 조금 두렵긴 하지만 일요일을 기다린다. 다시 기다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