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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Oct 12. 2017

맛있는 게 없는 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이유도 없는 그런 날

퇴근을 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지만 밥 때가 되었다.

맛있는 게 없다.

그럼 뭐 먹고 싶은 건 있나?

없다.

그럼 뭘 먹어야하지?

하는 궁리는

왜 먹어야하지?, 꼭 먹어야할까?

하는 회의로 바뀌고...


누구 만날 약속이라도 있었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뭐든 사먹었을텐데.

누구 밥 차려줄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무엇이든 냉큼 얻어먹거나 어떻게든 차려주며 함께 먹었을텐데.


이도저도 아닌 혈혈단신이라

밥 먹는 건 매번, 은근히

귀찮은 일거리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는 것보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는데 굳이, 애써, 일부러 먹어야하나? 고민하는 게 더 씁쓸하다.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먹는 기쁨과 당위성이 줄었다는 건, 뭐랄까...


사는 이유와 의욕도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활동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알약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루 3번 밥먹는 시간을 줄여서 무엇을 하려고? 어디에 쓰려고?


밥을 먹는다, 는 건

나를 이 세상에 조용하고 단단하게 고정시켜주는 행위이자 의식이었음을


쓸데없이 공복 중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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