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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Han 한승환 Dec 24. 2016

할 피니,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 그리고 마지막 편지


할 피니,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 그리고 마지막 편지

Hal Finney, the first Bitcoin receiver and his last letter  


<할 피니(Hal Finney)의 생애 사진>



오늘은 할 피니(Hal Finney)가 작고한 지 2주년이 되는 날(2014-10-28)이다. 할 피니는 치사율과 고통으로 악명 높은 루게릭 병(Lou Gehrig's Disease)에 의해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한 때 SNS에서 유행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이 루게릭병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모션이다.


우주론과 물리학 대가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이 앓고 있는 병으로도 알려진 루게릭 병은, 온몸의 운동신경세포가 점진적으로 파괴되어 말기가 되면 누워만 있어야 하는 불치병이다.





할 피니  


할 피니는 사토시 외에 최초로 비트코인을 채굴한 것으로 추정되며, 최초로 비트코인을 이체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게임개발 분야에서 종사하였고 사망이 근접해올 때에도 게임제작을 즐기며 여가를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암호학에 매우 관심이 많았으며, 비트코인에서 사용하는 작업증명 방식과 유사한 RPOW를 직접 개발하여 화폐설계작업을 한 경험도 있다. 최초로 공개키암호화 기법을 도입한 PGP개발자 중 한 명이기도 했으며, 비트코인 프로젝트에 중대한 기여를 하기도 했다.


(본인도 초기에 비트코인과 관련해 할피니의 글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다.)


운동도 좋아해서 루게릭 진단을 받기 전에는 마라톤을 즐기기도 했다.


<부부동반 마라톤을 즐기는 할피니>







할 피니의 마지막 편지
 

아래는 할피니가 직접 비트코인 커뮤니티에 작성한 편지의 내용이다. 할 피니는 마지막까지 긍정적인 자세와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귀감이 된다.


편지원문: https://bitcointalk.org/index.php?topic=155054.0


(그는 이 편지를 끝으로, 1년 반 뒤인 2014년 10월 28일, 58세의 나이로 작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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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나


2013년 3월 19일




"지난 4년 동안의 비트코인과 제가 함께 보냈던 파란만장한 시간에 대해서 써봅니다.


혹시 저를 모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할 피니입니다. PGP의 초기버전 개발에 참여하는 것으로 제 암호학 분야 커리어를 시작하였습니다. 필 짐머만(Phil Zimmermann)과 매우 가깝게 공동작업을 하였으며, 그가 PGP회사를 설립했을 때에는 첫 번째 직원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싸이퍼펑크(Cypherpunk)’들과도 관계를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관련 작업들을 진행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최초로 암호에 기반한 익명의 리메일러(anonymous remailer)를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2008년 후반에는 비트코인이 발표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년의 암호인들은 냉소적이 되는 경향이 있으나, 저는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항상 이상을 좇았고 암호, 미스터리 그리고 패러독스를 사랑했습니다.


사토시가 ‘크립토메일링리스트(cryptography mailing list)’에 맨 처음 비트코인을 발표했을 때에는, 온통 부정적인 반응뿐이었습니다. 암호사용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들이 매일 같이 올리는 이상주의적인 것들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거의 반사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죠.


저는 조금 더 긍정적인 편이었습니다. 특히 암호 결제 방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비트코인에 사용된 핵심 기술들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웨이 다이(Wei Dai)나 닉 재보(Nick Szabo)와 만날 기회가 있었고, 왕래도 자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제 스스로도 RPOW라는 작업증명기반 화폐설계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비트코인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맨 처음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공개했을 때, 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시 알아챘습니다. 아마도 제가 사토시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구동해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는 70 몇 번째 블록을 채굴했고, 사토시가 테스트용으로 저에게 10 코인을 보냈을 때 최초로 이체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후 며칠간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대부분 제가 버그를 발견하고 사토시가 그것을 수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사토시는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인물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가 대하는 상대가 일본계의 매우 총명하고 진실된 젊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생애에 걸쳐 너무나 많은 총명한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고, 덕분에 일종의 징표들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 비트코인은 꽤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대로 실행되도록 놔두었습니다. 당시에는 난이도가 1이었기 때문에, GPU가 아닌 CPU로도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간의 채굴 끝에, 컴퓨터가 뜨거워지고 팬 소음이 심해져서 실행을 종료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오래 켜둘 것 그랬지요. 물론 그 시작점에 제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큰 행운입니다. 결국 컵에 물이 반이나 차있다고 긍정적으로 보거나 반밖에 안 차있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시각의 차이인 것이지요.


그 이후 비트코인에 대해 다시 듣게 된 것은 2010년이었습니다. 비트코인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고 심지어 실제로 금전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크게 놀랐습니다. 먼지를 털어내며 오래된 지갑을 다시 열어보았고, 다행히도 비트코인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습니다. 마치 실제 돈처럼, 가격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제 후손들에게 가치가 있기를 바라면서 비트코인을 오프라인 지갑으로 전송시켰습니다.


후손들을 언급한 것은 2009년의 충격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입니다. 저는 당시에 갑자기 불치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사실 당시 저는 체중도 감량하고 중거리 달리기도 꾸준히 하면서 제 인생에서 최상의 몸 상태에 있었습니다. 중거리 마라톤에 몇 차례나 참여했고 마라톤 풀코스도 완주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마일 이상의 달리기를 하면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모든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연설을 제대로 하지 못해 더듬거렸으며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다리는 도통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9년 8월에 ALS, 즉 루게릭 병을 진단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유명한 야구선수가 동일한 병을 진단받고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ALS는 뇌의 신호를 근육에 전달하는 운동신경을 죽이는 증상의 병입니다. 처음에는 신체를 쇠약하게 만들다가 점점 전신에 마비를 가져옵니다. 이 병을 진단받은 사람은 보통 2-5년 뒤에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증상이 심각하지 않았지만, 점점 피로함과 목소리의 문제가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2011년 초에 은퇴를 해야 했습니다. 그 후로 병이 거침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완전히 마비가 된 상태입니다. 튜브를 통해 영양소를 공급받고, 또 다른 튜브의 통해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상업용 시선추적장치(eyetracker) 시스템을 통해 컴퓨터를 사용하며, 음성 합성장치를 통해 소리를 냅니다. 또한 하루 종일 파워휠체어에 앉아 생활을 합니다. 제 눈을 통해 휠체어를 조작할 수 있도록 아두이노를 이용해서 인터페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제 인생은 바뀌었지만, 그렇게 나쁜 건 아닙니다. 여전히 읽을 수 있으며 음악을 듣고 TV와 영화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발견한 것인데, 심지어 코딩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전보다 작업속도가 약 50배가량 느려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프로그래밍을 사랑하며 목표를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요즘에는 ‘마이크 헌(Mike Hearn)’씨의 제안을 보고 관련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지갑의 보안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신뢰 컴퓨팅(Trusted Computing)”에서 최근에 쓰이는 기법들을 적용하는 작업입니다. 거의 공개 준비가 되었고, 일부 문서작업만 남은 상태입니다.


네, 그리고 당연히 비트코인 가격 상승과 높은 변동성은 저를 즐겁게 합니다. 노력이 아니라 운으로 얻어진 비트코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돈이 달린 일이니까요. 저는 격동의 2011년을 보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나간다는 것입니다. 네, 이것이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꽤나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루게릭 병을 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 인생에 만족합니다. 이제 제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비트코인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학문적 관심사 이상입니다. 제 비트코인은 안전금고에 보관되어 있는데, 제 아들과 딸이 기술에 능통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잘 다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유산은 문제없을 겁니다."



-할 피니(Hal Fin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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