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나만이 아는 기록

아무도 모를 거야

by 아쉬타카

[하나. 535일]

오늘 아침도 언제나처럼 열심히 하나 옷을 고르고, 살짝 떼쓰는 하나를 어르고 달래서 옷을 입힌 뒤 10분 거리의 어린이집까지 결코 순탄치 만은 않은 등교 길에 잠깐잠깐 한 장이라도 사진을 더 찍으려고 애쓰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사진에 찍힌 하나 앞의 내 몰골은 어떤 상태였는지 아무도 모르겠지 하는 ㅎ


unnamed (11).jpg 등원 사진 찍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


요 근래는 하나 옷 입히는 재미가 예전보다 부쩍 늘다 보니 아침 하나 옷 고르는 데도 시간이 더 걸리고 (누굴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닌데 내 맘에 들어야 하나는 나갈 수 있다 ㅎㅎ), 어린이집 가는 길에 꼭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 올리는 하나 사진들은 그런 순간들 중 하나인데, 다 그 사진들처럼 순간 딱 하고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모델이 18개월 아이이다 보니 내 맘대로는 절대 되지 않는다 ㅎ


가끔은 자유롭게 활기치고 다니는 하나를 찍으려다 보니 나는 극한의 촬영 자세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길바닥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다거나, 바람이 엄청 불어서 머리는 헝클어지고 난리인데 정돈할 틈은 없고, 한 손엔 휴대폰 카메라, 한 손엔 어린이집 가방과 하나가 벗어버린 외투를 들고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일은 여간 인내를 요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고생한 뒤 예쁜 사진 하나 건지면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하지만.


unnamed (9).jpg 여기 억새밭도 얼마나 같은 길을 왔다 갔다만 했는지 모른다.


가족사진이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의 경우 그 사진의 추억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겠지만, 요즘 내가 하나랑 둘이 찍는 사진들은 아마 나 밖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일 것이다. 사진 속에 담긴 순간보다도 그 사진을 찍기까지의 일들, 그 과정과 하나 앞에 서 있던 내 모습은 (물론 직접적인 내 모습은 나도 못 봐서 모르지만 ㅎ) 앞으로도 영영 나만이 아는 기록일 거다.


unnamed (10).jpg 졸린 표정을 찍으려고 일어나자마자 하나를 앉히고 찍은 사진 ㅎ


오늘 아침에는 문득 그런 생각, 예쁘게 빛나고 있는 사진 속 하나 앞에서 철저히 촬영자로 거듭나고 있는 나를 보며 살짝 쓸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 또 건진 하나 사진을 보며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unnamed (8).jpg 이런 격한 사진도 마음에 든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곧 어린이집에 하나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다. 진짜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하나 없이 나 혼자 있는 시간도 엄청나게 빠르고. 하나가 커 가는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고.

둘 다 좀 천천히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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