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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Nov 18. 2015

2. 자동차

내 차라는 것의 생경함

나는 일찍이 독립을 하고 나서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꼭 갖고 싶었던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것들은 아주 먼  것들이라기보다는 어린 시절 가까운 친구나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하지만 우리 집에는 없었던 것들이었다. 꿈이라기 보단 일종의 현실적인 목표랄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8,90년대는 이른바 부의 상징이라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 테면 오리털 파카라던가 보온 도시락 같은. 한 편으론 '에이, 보온 도시락이 무슨 부의 상징이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주 가난한 편이 아니었던 내 어린 시절에도 잠시나마 보온 도시락이 부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 얘긴 즉슨, 나중엔 보온 도시락을 갖게 되었다는 점). 오리털 파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해보자면, 오리털 파카는 확실히 부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한 반에 오리털 파카를 입은 아이들이 제법 있었는데, 나는 거의 없었거나 아니면 나중에야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은데 오리털 파카 입은 아이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은 확실히 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네는 막 주공아파트가 건설되어서 다들 아주 부자까지는 아니지만, '아파트'라는 생활에 다들 조금씩 들 떠 있었던 분위기였던 것 같다. 


오리털 파카를  부러워했던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이건 단순한 부의  상징이라기보다 조금은 시대를 앞선 옷 혹은 물건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오리털들이 옷에 솜 대신 들어가 있어서 보온 효과를 내는 일종의 신소재 같은. 그냥 겨울이 되면 파카를 입었을 때 상체가 빵빵해 보였던 것이 부의 상징처럼 보였던 것 같다. 재밌는 건 나중에 오리털 파카를 무리 없이 입을 수 있게 된 다음에는 별로 추의를 타지 않게 되어 관심이 없어졌다는 것. 


오리털 파카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내가 부의 상징으로 여겼던 다른 것들에는 카펫, 소파, 에어컨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게 어렵게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데, 저것들 모두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뤄냈다. 20대 초반부터 독립을 해서 월세를 내가 벌어가며 살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내 집 아닌 내 집을 갖게 되고 나중에 월세 아파트에 살게 되었을 때보다, 그 아파트에 카펫을 깔았을 때 그리고 작은 소파를 들여 놓았을 때가 더 벅찼던 것 같다. 비용의 크기보다는 상징적인 느낌이 컸기 때문이리라.


자동차는 이런 후보에도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 말고 나중에 일정한 수입이 생긴 다음에도 자동차는 막연한  꿈같은 것이었다. 이상하게 자동차는 아주 나중에야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은 친적집을 포함해도 한 집도 자동차가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내게 누군가가 태워주는 차를 타는 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몇 친구들의 차를 탄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계속 직장 생활을 했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었기에 차를 산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할부 비용을 따져보고, 비용 대비 자동차를 가졌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회비용으로 계산해 본다면 어찌어찌 구입했었을 지도 모를 일이나, 다시 생각해도 자동차는 아예 선택지에 놓인 적조차 없었다. 


이후 회사를 다니면서 운 좋게 회사에서 자동차를 지원해 줘서 운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그러니까 작년이 되어서야 운전 면허도 땄다. 나는 운전할 일이 있을 때 면허를 따겠다는 것이 항상 주장해 오던 바였고, 결국 운전할 일이 생겼을 때 면허도 속전속결로 한 번에 번개처럼 따버렸다 (예상하겠지만 운전할 일도 없는데 면허를 따기 위해 내야 하는 학원비가 너무 아까웠었다). 그렇게 몇 달 간 회사차를 완전 내 차처럼 운전하며 다녔었는데, 단 한 번도 내 차라는 느낌은 없었다. 회사 차라고 하니까 출근해서 잠깐 잠깐 타는 차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명의만 내가 아닐 뿐이지 집에 주차하고 출퇴근하고 주말에도 사용하는 완전 내 차처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회사 차라는 인식이 몹시 강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오늘 생애 처음으로 내 차라는 것을 갖게 된 그 순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어디 가서 취미를 드라이브라고 얘기할 만큼 운전을 많이 했고, 또 좋아한다. 그리고 회사를 관두고 차가 없는 동안에 여러 렌터카 서비스를 통해 자주 다른 종류의 차들을 운전해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심지어 렌터카 서비스를 통해 운전해 보기도 했던 같은 모델의 차를 내 차로 갖게 되었음에도, 내 차를 처음 운전하는 느낌은 정말 생경했다. 운전하는 법을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 보다는, 그냥 '내 차'라는 것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다. '드디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내 소유의 차를 갖게 되었어 ㅠ'라는 감동도 아니고, 그냥 이상했다. 


나는 이 이상한 차를 앞으로 몇 년이나 타야 한다. 그래서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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