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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Aug 07. 2019

73. 오래 공들인 돌파구

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비관적이라면 비관적이고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인 자세로 살아오고 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돼야 되는 거다'라는 식이다. 거의 될 것 같은 일들도 최종 단계에서 무산되는 일들이 실제로 빈번히 벌어지고, 당연히 될 것 같지만 의외로 안 되는 일들도 많다는 걸 어느 시점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런 주의(?)로 살면서 (단점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장점이라면 남들보다 쉽게 들뜨지 않고 또 섣불리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일이 훨씬 줄어들었다. 예를 들면 돈이 오고 가는 정식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모든 절차를 마쳤음에도 나는 스스로 '돈이 최종적으로 내 통장에 입금되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다'라는 식이다. 남들보다 기뻐하거나 안도하는 포인트가 좀 더 뒤쪽에 놓여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 보니 잘될 것만 같다가 안타깝게도 잘 되지 않은 일들에 비교적 덜 실망하게 되었는데, 그런 나에게도 최근 조금은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다.


예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같은 사업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는 있지만 주제에 맞게 셀렉션 하여 전시/판매하는 자체로 장점을 갖거나 반대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역시 전시/판매할 때 장점이 있는 장사다. 점점 더 새로운 아이템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엄청난 검색을 통해 어떤 서비스를 하나 찾게 되었다. 정식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제작한 상품들만 판매를 하는 업체인 동시에, B2C가 아니라 B2B를 대상으로 한 업체라 우리가 딱 찾던 업체였다.


가끔 이런 곳을 어렵게 찾게 되어도 대부분 정품인지 불확실한 경우가 많거나 취급하는 브랜드가 너무 올드한 (일반적인)것들이라 우리와는 접점이 적은 곳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업체는 가장 핫한 영화/드라마/애니 브랜드들을 취급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모두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제작/판매하는 업체라 마음에 쏙 들었다. 


영어의 압박은 있었지만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러 차례 담당자와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고, 결국 정식 가입을 승인을 받고 첫 주문을 마치는 것까지 성공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왜 외국회사는 일을 잘할 거라는 사대주의적인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번 피드백을 받는 데까지 며칠씩 걸리고 피드백을 언제쯤 주느냐고 다시 묻는 일을 여러 차례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사실 처리한 커뮤니케이션만 따지고 보면 한 일주일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일이었는데, 거의 한 달 넘게 진행이 되었다. 그 사이에 그 담당자는 휴가도 잠깐 다녀왔고 (윽).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다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답장이 도착했다. 내가 주문한 품목들이 대부분 월드와이드 라이선스가 허용되는 제품들이 아니라, 허용되는 제품들만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인도 미안했는지 메일 머리에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러게 내가 저 멀리 한국이라는 곳에서 주문한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걸 한 달이나 어렵게 커뮤니케이션하다가 최종단계에 와서야 얘기를 하며 안된다고 하다니, 솔직히 힘이 많이 빠졌다. 돼야 되는 거지 라는 식으로 사는 나조차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월드와이드 표시가 되어 있는 제품들을 둘러봤지만 우리가 판매할 만한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능 여부에 대한 재검토를 여러 사유와 함께 메일로 보냈지만, 아직 답장도 오지 않았고 아마 달라지는 건 없을 듯하다.


이 새로운 계약건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기대를 안겨준 제법 큰 덩어리의 프로젝트였다. 이 계약건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훨씬 다양한 제품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너무 아쉬웠다. 만약 나 같이 돼야 되는 거지 라는 식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주문을 마친 뒤에 벌써 새로 전시장을 주문하고, 관련한 홍보까지 마쳤을 거다. 그 정도로 정말 되는 것 같았으나 최종단계에 이르러 가망이 없게 됐다.


어차피 이 글을 볼 수도 없을 테니 그의 실명을 얘기하는 것으로 나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다.


'레이첼, 그러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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