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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Jul 16. 2019

67. 배운 도둑질을 써먹고 있었어

역시 인간은 배워야

회사를 관두기 전 몇 해는 우리 회사에 광고를 의뢰하는 브랜드들의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컨설팅이나 전반적인 브랜딩 등을 제안하고 실행하는 일들을 했었는데, 사실 이 일을 하기 전에 더 좋아서 신나게 했던 일은 직접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직접 만드는데 관여했던 서비스들 가운데는 블로그 마케팅 플랫폼 서비스도 있었고, 한창 유행하던 음식점 리뷰 애플리케이션 등도 있었다.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며 가장 촉각을 곤두 세우는 부분은 역시 사용자의 경험과 반응이다. 기획 의도를 사용자가 쉽게 알아차리고 그대로 따라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기획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소비자가 경험하는 탓에 전체적인 방향성을 고민하거나 수정하는 일도 많았다.


사용자 경험, 실사용자의 반응이라는 건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인데, 이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빠르게 대응 방안을 내놓는 것이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그랬던 것 같다). 


이 얘기를 갑자기 왜 꺼냈나 하면, 요새 매장을 운영하면서 회사 다니면 배웠던 바로 이 도둑질을 요긴하게 써먹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배운 도둑질을 잘 써먹고 있던 것이다 (그래도 회사 생활이 무언가 도움이 되는 걸 남겼군).


뒤늦게 깨달은 이유는, 이렇게 손님의 경험이나 미세한 반응들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이들보다는 내가 이런 점에 훨씬 민감하다는 걸 알았고, 그건 회사 다닐 때 서비스를 운영하며 배운 스킬이었던 것이다. 작게는 어떤 제품을 어떤 위치에 놓을 것이가 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음악을 어떤 타이밍에 틀 것인가 또는 제품을 어떤 식으로 노출할 것인가 (겹쳐 놓을 것인가, 펴 놓을 것인가, 세워 놓을까, 눕혀 놓을까 등등) 그리고 어떤 타이밍에 무슨 아이템을 주력으로 노출할 것인가 등등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매장 운영의 일들이 사실은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좀 더 규모가 커지고 (아주 커지진 말고) 비용적으로 여유가 더 있다면 조금 덜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시원시원하고 큼직큼직하게 일하고도 싶지만, 아직은 온몸에 감각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때다 (흡사 스파이더 찌릿찌릿처럼). 


그렇게 문득 오랜 회사 생활을 통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을 얻게 되었다니, 뭔가 보너스를 받은 것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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