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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Sep 05. 2019

79. 이제 최종단계야

we are in the endgame now

2019년 8월 영업을 마무리했다. 이번 달은 개업한 지 1주년이라 나름 의미도 있었고, 드디어 1년이란 시간을 데이터와 함께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2018년 8월 말에 문을 열고 정확히 딱 1년의 시간을 그래프로 보면 다행히 점점 매출도 상황도 좋아지는 그림이었다. 정체기가 금세 닥치거나 최악의 경우 몇 달 만에 하락 새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금씩이라도 계속 나아졌다는 건 몹시 긍정적인 일이다. 그런 그림에 화룡점정으로 이번 달은 영업이래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플리마켓 같은 외부 행사도 없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하루하루 꾸준히 높았던 매출이 결국 월 최고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여기서 박수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달에 앞으로의 1년, 아니 더 장기적인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됐다. 진짜 아주 멀게 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면 좀 더 여유가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바로 한 달 단위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는데, 몇 달간 적지 않게 고민한 탓에 몇 가지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 세웠던 계획들, 예상 시간들에 비해 빨리 이뤄진 것들도 있고 더뎌진 일들도 있었다. 매출은 워낙 기대치를 낮춰 놓은 탓인지 매번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이제와 얘기지만 만약 처음 여유 있게 세웠던 계획대로 '뭐 1년은 까먹는다고 생각해야지' 수준이었다면 지금쯤, 아니 벌써 몇 달 전에 심각하게 미래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만큼 여러 번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운이 좋았고, 생각보다 장사도 잘 됐다. 지금도 자금 때문에 허덕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계속 잘 안돼서 어떡하지 라고 고민하는 것이라면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잘 되고 있는데 어려운 것이라 그나마 다음을 계획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독립 책방이나 취향 가득한 가게를 오픈하는 분들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은데, 우스운 말이지만 가게로 돈을 엄청 벌거나 하는 마음은 거의 없다. 정말로. 돈 많이 버는 걸 누가 마다하겠냐 반문할 수 있는데 (당연히 마다하는 건 아니다 ㅎ), 이 말이 진정성이 있는 게, 돈을 많이 벌 계획이었다면 절대 시작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운이 좋다면 조금 여유 있게 운영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운'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실제로 많은 독립 책방을 꾸리고 있는 사장님들이 책방에서는 이익을 거의 보지 못하고 프리랜서 활동 등으로 버는 수입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독립 책방은 아니지만 도서의 마진 구조와 매출 등을 알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구조다. 즉, 바꿔 말하면 생계가 걸려있기는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결코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가게를 열며 꿈꿨던 미래는 우리 세 가족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욕심 안 부리며 살 수 있을 정도의 생활비만 겨우겨우 충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렇게 저렇게 운영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매달 아슬아슬하게 살 떨리는 수준은 좀 넘어서 살짝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정도. 


그런데 마이페이보릿을 1년 운영해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아슬아슬한 수준이라도 지속하려면 불가피하게 확장이 필요하다는 걸 확인했다. 앞서 말했듯 장사가 잘 안됐다면 잘 되는 것만을 목표로 했을 텐데 어느 정도 잘 됐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이 구조의 명확한 한계를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확장이 아니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결론에 닿을 수 있었다. 여기서 확장이라는 건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 하나는 현재 운영하는 군산 매장의 크기를 말 그대로 확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군산이 아닌 다른 곳에 분점을 내는 것이다. 


아마 보통의 사업가라면 1년도 되기 전에 둘 중 하나의 확장을 쉽게 선택했을지 모른다. 장사의 기본에 맞춰본다면 그랬어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이 일을 최대한 소소하게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큰 욕심 안 부리고 근근이 할 수 있는 수준을 정말로 꿈꿨다. 그렇기 때문에 매장의 확장이나 분점은 처음부터 계획에도 없었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지금 시점에도 끝까지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다른 지역에 매장을 하나 더 낸다는 건 그저 들어가는 돈이 많아진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처음으로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데, 회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는다는 것도, 누군가를 고용해 책임지는 것도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 선택을 최대한 피하고만 싶다. 그리고 그나마 1년 간 잘 버틸 수 있었던 건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최대한 좁혀왔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인데, 분점을 내고 직원도 고용하게 되면 그 관리 범위를 넘어서는 변수가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아주 신중하게 접근 중이다. 아마 이것이 생계를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아니었다면 벌써 선택지에서 지워버렸을 텐데, 내가 가장 피하려고 한 방법이 유일한 선택지로 남은 것이 아이러니다. 그나마 운이 좋은 아이러니. 


과연 마이페이보릿의 앞으로 1년은 어떻게 될까. 군산이 아닌 곳에 또 다른 마이페이보릿을 정말 만들게 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곳은 또 어디가 될까? 또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영화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속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 'we are in the endgame now'처럼 지금 우리는 마이페이보릿 시즌 1의 최종단계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오역처럼 '가망이 없어'는 아니길 바라며. 짧았던 마이페이보릿 시즌 1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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