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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Dec 04. 2015

8. 매일 매일 저주와 맞서다

신이 있다면  그분은 내게 감정이...

같이 회사를 다녔던 동료들이나 지금의 아내는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나는 '머피의 법칙'이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일상생활 속에서 별로 운이 없는 편이다. 특히 음식점 등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초자연적인 우주의 힘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일 정도다.


회사를 다닐 때 점심시간에 동료들 여럿과 식당에 갔던 일이다. 언제라고 꼭 집을 필요도 없는 것이 너무 자주 생기는 일이라. 일단 가벼운 일부터 얘기하자면, 내가 주문한 메뉴는 꼭 제일 늦게 나온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 저주를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적은 횟수였으나 점차 횟수가 늘면서 이제는 나는 물론 주변 사람들도 '아쉬타카님 주문은 왜 항상 늦게 나와요'라고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저주에 쉽게 당할 내가 아니지. 나는 이 저주를 풀기 위해 몇 가지 노력 아닌 노력을 했다. 첫 번째는 독특한 메뉴가 아닌 그 음식점의 메인, 인기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다. 본래는 매번 안 가본 식당이나 안 시켜본 메뉴를 모험적으로 시켜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저주에 걸리다 보니 이런 모험의 재미는 과감히 포기해보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내 음식만 늦게 나오는 일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로 취했던 조치는 남들이 여럿 시키는 주문을 시켜보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볶음밥이 아무리 그 집의 메인 메뉴라고 해도 여러 명이 삼선짜장을 주문한다면 이 삼선짜장 파에 한 멤버로  숨어드는 것이다. 10명이 가서 볶음밥 1개, 삼선짜장 5개, 짬뽕 4개를 시켰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마치 악령 든 자로부터 숨어 있는 부마사처럼 삼선짜장 5명 속에 숨어 있었으나 이 저주는 어찌 알았는지 나를 콕 집어 냈다. 놀랍게도 삼선짜장이 4개만 먼저 나오고 1개는 늦게 나온 것이다. 사실 이 때의 충격은 좀 컸다. 이때는 좀 신을 원망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이런 일들은 참으로 많았다. 한 여름, 너무 덥고 목이 말라 호프 집에 가서 생맥주 두 잔과 치킨 한 마리를 주문했다. 맥주가 나왔고 곧 나올 치킨에 대비해서 맥주를 봐가며 마시고 있었는데, 한 참을 지나도 치킨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맥주를 치킨에 맞춰 봐가며 마셨는데도 다 마실 때 까지 치킨이 나오질 않았다. 아마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벌써 왜 안 나오냐고 얘기했을 테지만 나나 아내는 절대 그런 사람이 못된다. 그냥 '나오겠지..'하는 편이다. 이런 일로 부딪히는 자체를 싫어한다. 그런데 결국 더위로 흘린 땀이 모두 식고, 에어컨 바람에 냉기마저 돌 때까지 치킨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가게를 나오며 생맥주 값만 계산했고 호프집에서는 미안하다면 생맥주 1잔 값을 받지 않았다 (이게 뭔가).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저주도 있다. 아주 잦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식당 가서 음식을 먹을 때 심심치 않게 머리카락 등을 발견하는 편이다. 돌을  씹는다거나.  그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야, 진짜 나 같은 사람한테 걸렸으니 망정이지, 다른 진상 고객한테 걸렸으면 난리 났겠네'하고는 그냥 계속 먹는다. 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거리를 걸으며 예를 들어 1만 번 정도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쳤다고 가정했을 때 적어도 9천9백90번은 내가 길을 피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피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상대가 피했을까. 아니면 매번 부딪혔을까. 이것도 한 번 시험해보고 싶은데, 그럴 만한 성격이 못 된다.


음식점 저주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더 예를 들자면 (잊지도 않아) 푸드카페라 불리는 일종의 김밥천국에 갔을 때의 얘기다. 그 때도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그 때도 여럿과 함께 남들 다 시키는 메뉴 중 하나를 주문했었다. 역시나 내 주문은 빠르게 나오지 않았고 그래도 언젠가는 나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동료들이 밥을 하나 둘 씩 다 먹어가고  점심시간도 다 끝나가는데 내 주문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모두가 식당을 나올 때 까지 내 주문은 나오지 않았다. 주인은 미안하다면 아주 익숙한 재스쳐로 뒤통수를 극적였고, 나는 또 저주에 당했다는 생각에 겸허히 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냥 김밥으로 포장해 달라고 주문해, 결국 김밥을 싸와 사무실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더랬다. 기묘하죠.


이것 말고도 나는 매일 매일 생활 속에서 작은 저주들과 맞서며 살아간다. 

그래서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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