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회사를 관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니 수능 시험이 끝난 바로 다음날부터 나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평소 잘 알고 있던 예전 성당 선생님이 하시던 비디오 가게 앞 붕어빵 장사였는데, 한 겨울이라 손발이 시리고 무엇보다 한참 멋 부리기 좋아할 나이였기에 오가며 같은 학교 아이들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붕어빵 총각'으로 점점 각인되는 것 같아 마음고생이 있기는 했지만, 하루 5~6시간씩 붕어빵 기계 앞에서 열심히 판을 뒤집고 돌리고 나면, 사고 싶은 것들과 먹고 싶은 것들을 어느 정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벌이가 되었다. 시즌 아르바이트였던 붕어빵 장사로 신뢰를 얻은 나는 본점이라 할 수 있는 비디오 가게에 풀타임으로 고용이 되어 또 한참을 일하게 되었고, 그 비디오 가게의 주인이 바뀐 뒤에도 한참을 더 일하다가 다시 예전 선생님이 하시는 분식집에 고용되어 또 한참을 일했더랬다. 만약 이 기술을 계속 사용해서 쭉 일했더라면 지금쯤 요식업계에 젊은 사업가가 되어 있으려나. 하지만 지금까지 이때 배운 여러 분식 제조 기술 중 다시 써먹어본 건 떡볶이 만드는 것뿐이다.
약 1~2년 정도의 아르바이트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이 시간들은 이 책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은 내용들은 이른바 '회사'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다니게 된 것들로부터 시작하여, 최근 그간 다닌 회사 중 가장 큰 규모의 회사를 그만두기까지의 약 15년 넘는 시간들을 통해 얻은, 아니 겪은 다양한 경험적 정보들이다. 이미 시중에 셀 수 없이 나와 있는 처세술 책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 처세술 책들과는 방향성이 조금 다를 것이다 (‘것이다'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는 건 그런 처세술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처세술에 관한 책들이 말 그대로 사회와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지에 관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면, 내 이야기는 그와는 전혀 다르게 많은 예비 직장인 혹은 사회 초년생들이 어떤 꿈과 기대들을 갖고 회사란 곳에 입사하지만, 현실은 그것과는 많이 달랐고 쉽지 않은 경쟁과 조직에서 악착같이 노력하며, 정치하며 살아남기보다는 그래서 관두는 편이 나았다는, 보통의 사회에서 바라보았을 때 내 이야기는 실패 담에 가깝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방향성에 있어서 처세술 책들과는 정반대에 있다고 보면 되겠다. 더 높이, 더 나은 결과로 산을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정상에 올랐다가 또한 스스로 산을 내려오는 얘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동안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아직 그러한 시간을 겪지 않은 이들에게, 또 동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도 진심이지만, 그 만큼이나 글로서 내 지난 회사 생활을 쏟아 냄으로서 내 삶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싶은 것이 더 큰 진심이다. 정말 회사 생활과는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고등학생 신현이는 의외로 친구들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장 먼저 사회생활에 뛰어들어 놀랍게도 15년이 넘는 시간을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지내버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회사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회사를 관두는 것은 회사 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겨운 일이었고, 그 이후인 아직까지도 쉽게 직장인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글을 한 움큼 쏟아내고 나면 조금은 사회 물을 씻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이 책을 시작한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