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호의를 베푸는 것은 그 만큼 힘든 일

by 아쉬타카
ho.png ⓒ 외유내강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 (2010)'를 보다가 극 중 류승범의 이 대사를 듣고는 극장에서 혼자 움찔했더랬다. 왜냐하면 이 한 마디는 내가 오랜 회사 생활을 하며 터득한 진리 가운데 첫 손에 꼽을 만한 만고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 대사가 많은 관객들에게도 나처럼 와 닿았는지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알아요'로 재해석되며 더 큰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여하튼 다시 말하지만 이 말은 정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동시에, 그럼에도 아주 명확하게 문제를 꿰뚫고 있는 명문이자 진리다.


사람들 마다 이 대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일단 호의가 계속된다는 것부터 이 문제는 시작된다. 즉, 계속되지 않으면 호의는 전혀 아무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좋은 의도를 갖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을 이야기하는데, 이 초심의 좋은 의도를 지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걸 호의를 베풀면 베풀수록 느끼게 된다.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나는 호의에는 일종의 책임이 따른 다는 책임론을 주장하는 편이다. 거대한 힘에만 책임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호의에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 다는 얘기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 '계속된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익숙해진다는 얘기와 같다. 다시 바꿔 얘기하면 꼭 호의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반복되면 익숙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순리라는 것이다. 즉, 호의도 계속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익숙해진 것은 곧 당연한 것(권리)이 될 수 밖에는 없다. 호의를 계속 베풀어 본 적이 없거나 이 문장을 영화로만 접한 사람들은 아마도 이 문장을 특별한 경우로 곡해하기 쉬운데, 이 문장은 문장으로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합당하다. 더 부족함 없이 이 문장을 마무리 지으려면 아래처럼 하면 완벽할 거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예요"


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건 당연하다는 걸 앞서 인지했다면 그다음은 앞서 이야기한 책임에 대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를 알면서도 호의를 계속 베푼 쪽이 잘못이다. 왜 잘못인지는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다.



호의를 지속적으로 베풂 → 상대가 자연스럽게 권리로 인식함 (정상) → 상대가 호의를 권리로 인식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음 →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상대를 탓함 → 상대는 왜 이제 와서 내 탓을 하냐며 불만 표출 → 적반하장이라며 더 분노함 → 결국 호의를 전혀 베풀지 않은 사람보다 못하게 됨



보통 호의를 베푼 경우 (특히 지속적으로 베푼 보통 사람의 경우) 위와 같은 전개 과정을 99% 겪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정상적인 건 첫 번째와 두 번째 까지다. 두 번째까지는 논리적으로도 완벽하다. 세 번째부터는 현실적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논리적이지는 못하다. 감정적이고 호의를 베푼 쪽이 100% 불리할 수 밖에는 없는 구조다. 가장 잘못된 것은 역시 세 번째 행동이다. 호의를 계속 베풀면 당연하게 인식하는 것이 정당한데 그것에 대해 왜 고마움을 모르냐고 따지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는 봉사가 있는데, 요 근래야 봉사라는 것도 Give & Take가 되어 버렸지만 본래 봉사나 기부라는 것은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바라는 순간 봉사가 아닌 것처럼), 호의 역시 고마움을 당연하게 기대하는 순간 의미가 퇴색됨은 물론 표 1의 오류에 빠져버리고 만다.


사실 회사 생활을 하는 대부분이 신입 사원 혹은 평범한 경우라면 처음엔 자의 던 타의 던 동료에게 호의를 베풀게 되는 (베풀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 작게는 단순히 일손이 모자라 손을 보태게 되는 것부터 크게는 본래 자신의 일이 아닌 일을 대신해주게 되는 걸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찌 되었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참 호의를 많이 베푼 쪽에 가까운데, 10번이면 9번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1번도 호의를 베풀 당시에는 결과가 좋지 않았고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진심 호의였군요 ㅠㅠ'라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예전 음반 쇼핑몰을 다닐 때 본래 내 포지션은 MD였는데 가끔 주문량이 많거나 인기 아티스트의 앨범이 발매되는 날엔 포장을 돕곤 했었다. 포장이 본 업무인 직원은 처음엔 내가 돕겠다고 하자 '안 도와주셔도 돼요, 괜찮아요'라며 예의상 거절했었다. 지금 와 얘기지만 이 대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표 1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였었다. 나는 그 거절의 메시지를 예의상 거절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며 '아니요, 괜찮아요. 바쁜데 나눠서 하면 금방 하죠~'라며 포장 일을 도왔다. 하지만 이 작은 행동은 나중에 큰 파도로 돌아왔다.


몇 번 이런 식으로 돕던 어느 날. 그 날도 어떤 유명 아티스트의 신보가 나왔더랬나. 포장 일이 많았던 그 날, 그 날은 내 업무도 몹시 많았더랬다. 그래서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디 선가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먼발치에 있는 포장 파트 쪽에서 쏘는 레이저였다. 그 눈빛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는데 '야, 이렇게 바쁜데 너 왜 안와?'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중엔 기분 탓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어느 순간 포장 일은 나의 또 다른 일이 되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화가 났었던 포인트는 이거다. 내 일이 아닌 포장을 하는 건 그럴 수 있다. 더 나아가 내 일이 바쁘더라도 포장 일을 돕는 것도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얘기했을 때 내 업무보다는 포장 일이 더 마감 시간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에 우선순위로 포장 일을 도울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화가 났던 건 내 일이 바쁠 때 '왜 돕지 않아!'라는 시선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이때 벌써, 호의를 베푼 것이 어느 정도 책임 못질 잘못이었음를 깨닫고 있었기에 왜 돕지 않느냐는 질타에도 군말 없이 스스로 수긍이 가능하던 때였다). 화가 났던 건 애초부터 단 한 번도 돕지 않았던 다른 직원들에게는 왜 그 불만의 소리가 향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미안해서 어떡하면 조금이라도 도와 줄까를 생각하고 있는 편이었는데 이런 나를 향해서는 불만을 토로하지만, 반대로 단 한 번도 돕지 않았던 이들에겐 절대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무언가 억울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럴 거면 나도 처음부터 도와주지 말걸 왜 내 아까운 시간을 쪼개서 도와줬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고 얻은 교훈은 이럴 거면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를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텐데,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호의는 계속되면 권리가 되니까 아예 자신 없으면 호의를 베풀지 말라는 것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이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일 텐데, 결국 그 호의는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 독을 이겨 낼 내성이 없다면 애초부터 그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고 해서 돌아오는 불만이나 부당함은 거의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과 호의가 계속되었을 때의 크기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처음엔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호의를 베풀지 않는 것이 쉽지 않았다. 너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풀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아직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남들에게 말은 그러지 말라고 잘하는데 나는 정작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두 번째로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는 순정 100%의 호의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자연에 거스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는 어느 성인의 말처럼, 그 어떤 대가나 그 어떤 매몰찬 상황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애초부터 전혀 기대를 갖지 않고 100%의 호의를 베푸는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 목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겪는 상처는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오히려 그것이 화살이 되어 상처로 콕콕 돌아올 때 일 것이다. 나는 잘 해주려고 했던 일들, 나는 진심으로 생각해서, 이해해서, 위해서 어떻게든 잘해주려고 내 시간과 정성을 들여했던 행동들을 결국 상대가 전혀 알아 주지 않았을 때 오는 서운함.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 서운함 때문에 한 번도 그렇게 얘기하는 상대에게 맞서서 얘기해 본 적 조차 없는 것 같다. 따져보기 전에 이 상황을 따져야 하는 것 자체에 서운하고 상처가 된 터라 그냥 그 조차도 '말어라' 싶었던 것이다. 아마 나 말고도 이런 뫼비우스의 띄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이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남들처럼 영리하게 행동하면 아무도 탓하지 않고 스스로도 편하다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마음속 쓸데없는 감정이 동해 또 어쩌지 못하고 호의를 베풀고는 나중에 돌아오는 서운함에 상처받고 또 상처받는.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시작을 안 하는 것도 진정한 호의 일지 모른다. 아니면 내가 도전하고 있는 것처럼 진짜 '호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처받지 않는 호의. 베푸는 것으로 종료되는 호의. 그래서 그것이 권리가 되어도 너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호의. 이것은 나에게도 영원한 숙제다. 이 숙제를 풀게 되면 아마 이 곳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분들에겐 첫 번째 방법을 추천한다. 두 번째 방법은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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