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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May 06. 2021

나의 문어 선생님

그대로 놔둘 것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 2020)

그대로 놔둘 것


지난 1년 간 '언젠가 봐야지 봐야지'하며 나중으로 미뤄두었던 영화가 한 편 있다 (사실 한 편이 아니지만). 이렇게 한 번 때를 놓치게 되는 영화는 무슨 바람이 불어야만 갑자기 보게 되는데, 최근 그런 바람이 한 번 불었다. 언젠간 봐야지 했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 2020)'는 일찍이 큰 화제가 됐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최근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번 바람이 일었고, 나도 뒤늦게 이 좋은 작품을 감상하게 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 영화감독이 우연히 남아프리카의 바닷속에서 문어 한 마리를 만나게 되고, 호기심에 그 문어와 약 1년 간 교감을 나누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없었던 존재와의 교감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환기시킨다. 지능이 높다고 알려져 있는 문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구나 하는 직접적 놀라움을 넘어서는 메시지가 이 작품에는 존재한다.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없는 존재와의 교감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또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은 그대로 인간과 환경의 관계로 연결된다. 


환경 파괴로 인한 문제가 더 이상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적어도 내 생애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어쩌면 내 생애에 커다란 환경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현실적 공포감이 점점 확산되어 가는 분위기다. 그만큼 환경 파괴의 가속도는 엄청난 속도로 빨라지고 있고, 인간의 책임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환경 보전이나 환경 파괴의 위험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다큐들도 많지만, '나의 문어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그저 지구의 주인이 아닌 지구의 일원으로서 인간과 다른 동물(문어)이 교감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런 교감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는 앞으로도 가능할지에 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되묻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교감이 전하는 감동과 메시지는 여느 선동 작품들보다 덜하지 않다. 그 점이 아마 이 다큐멘터리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일 거다.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그렇게 1년 가까이 교감을 쌓았던 문어와 이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극영화였다면 혹은 지구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이었다면 인위적으로 손을 써서 그 순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본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문어를 교감의 대상으로 느꼈기에, 남자가 인위적으로라도 문어를 공격으로부터 구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교감을 나눴던 남자는 그 과정을 그저 지켜본다. 인간이 인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그냥 놔두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인간인 우리는 아주 자주 자연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이든, 혹은 아주 이기적인 이유이든 간에 본래 인간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환경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곤 한다. 그럴 때마다 과연 이것이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상의 모두에게 옳은 일인가 묻게 된다. 아마 대부분은 인간에게만 이로운, 그것도 실은 지금 당장만 이롭고 결국은 인간에게도 옳지 않은 일일 거다. 


현재 지구의 상황은 아마도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될' 수준일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복원과 파괴를 막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일단 '그대로 놔두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더 파괴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그다음 단계인 적극적 보호 활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놔두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과 같은 가르침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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