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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Nov 05. 2021

조용한 희망 (Maid)

올해 가장 응원하고픈 이야기


조용한 희망 (Maid, 2021)

올해 가장 응원하고픈 이야기


2021년도 벌써 11월로 이제 두 달이 채 남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겠다. 우연히 보게 된 넷플릭스 드라마 '조용한 희망 (Maid, 2021)'은 올해의 드라마다 (tmi로 올해의 일드는 '콩트가 시작된다'). 보통 올해의 드라마쯤으로 꼽으려면 무언가 확실한 한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깊은 울림이나 볼거리 또는 완성도 등이라면 이 작품을 꼽은 이유는 첫 째도 둘 째도 공감이다. 주말 연속극을 보며 심하게 몰입돼 TV를 보며 들리지도 않을 드라마 속 캐릭터들에게 소리 내어 말하곤 하는 중년 시청자들의 맘이 이런 걸까. 이 드라마를 보며 몇 번이나 속으로 (가끔은 살짝 소리 내어) 주인공에게 닿길 바라며 이런저런 말들을 외쳤는지 모른다. 그렇게 꼭 이 마음이 닿았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이 들었을 정도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 알렉스의 이야기는 공감되고 또 응원하고픈 이야기였다.


원제인 'Maid'는 파출부 정도로 부를 수 있을 텐데 극 중 알렉스가 우여곡절 끝에 갖게 된 일이 파출부여서 그렇다. '조용한 희망'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나쁘지는 않지만 원작의 의도가 가장 우선한다는 걸 떠올려 보면 직업 외에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파출부'라는 제목이 더 담담한 느낌이다 (참고로 이 드라마는 스테파니 랜드의 실화를 담은 에세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이 책의 국내 발간 제목이 '조용한 희망'이어서 드라마 역시 이 제목으로 번역된 것 같다). 



너무 어렵고 혹독한 환경에 처한 인물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경우는 더 큰 힘을 얻게 되는데 보통은 그 고통이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지도록 연출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던 2006년작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iness)' 같은 작품이 그렇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 아직도 영화 속 주인공의 고통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현실의 막막함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깊이 각인됐다. '조용한 희망' 역시 비슷한 고통과 현실을 그려내는데 연출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극적인 상황들이 여럿 발생하지만 이 이야기 자체가 스스로가 겪은 기록에서 시작했고, 또 이에 감동받은 다른 이가 연출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극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장치들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한 편으론 그런 장치가 없이도 충분히 이 현실의 암울함이 전달되기 때문이고, 또 한 편으론 이 작품으로 인해 또 한 번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깃들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내게 이 드라마가 특히 공감되었던 이유는 어린 자녀가 깊이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역시 어린 자녀와 함께하는 '행복을 찾아서'도 지금 다시 본다면 더 고통스러운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양면적이긴 한데, 어린 자녀가 있다는 건 한 편으론 모든 어려움이 몇 배가 되는 환경적 제약이다. 나 하나만 신경 쓰면 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극복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적어도 훨씬 수월해지는) 반면, 아무리 절망적인 현실도 내가 돌봐야 하는 어린 자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극복해 내곤 하는 초인적인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공감되는 장면들이 이 드라마에는 여럿 존재한다. 단순히 주인공 알렉스를 엄마로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환경에 놓인 세 가지 캐릭터 (엄마로서의 알렉스, 딸로서의 알렉스, 홀로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알렉스)를 모두 가볍게 묘사하지 않으면서 각각의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고 결국엔 알렉스라는 캐릭터에 더 큰 공감대를 갖게 만든다.



연대라는 가치를 그리는 방식도 좋았다. 가끔 연대라는 대명제, 혹은 더 고귀한 가치를 위해 그 와중에도 희생되는 작은 가치들과 개인들에게는 인색한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연대의 힘을 소개하면서도 적극적 개입을 하지 않고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는 동시에, 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주인공의 심리에도 힘을 싣는다. 속으로는 '왜 도움을 더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아!'라고 소리치게 되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그것이 순간의 불만 정도로 사라질 정도로 이 이야기는 많은 감정들을 섬세하고 다루고 마무리해 낸다.


본래 현실적인 고통이 깊게 느껴지는 영화는 아무리 희망적인 메시지가 결론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쉽게 권하지 않게 되는데, 이 작품은 널리 추천하고 싶다. 특히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놓인 이들이라면 적어도 작은 위안과 위로는 얻을 수 있을 테니.



* 극 중 모녀 지간으로 나오는 앤디 맥도웰과 마가렛 퀄리는 실제로도 모녀 지간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캐스팅이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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