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 수 없어도 위로할 수 있어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청각 장애를 가진 복서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다. 이 한 줄의 시놉시스만 봐도 예상되는 전개나 결말 등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클리셰들과는 충분한 거리가 있다. 또한 삶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는 많은 류의 일본 영화들과도 조금은 결이 다르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은 일본 영화들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이 영화는 그런 일상을 조명하는 것 같지만 그 삶의 주인공인 복서 게이코(키시이 유키노)의 마음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한 것이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영화 속 대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정확히 게이코가 왜 복서가 되었는지 (그것도 호텔 직원으로서의 일을 병행하면서), 또 왜 복서를 당분간 쉬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도 영화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 보통의 전개였다면 복서가 되고자 하는 명확한 의지나 이유가 게이코에겐 있었을 것이고, 이 의지가 타의로 인해(복싱 체육관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는 일) 문제를 겪게 되면서 오는 갈등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이렇게 인물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없는 이야기는 영화의 제목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청각 장애가 있어 비장애인들과 말로 대화할 수 없어도, 눈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연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는 쉬운 결론을 내기보다는, 그저 '눈을 들여다보는' 행동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화를 하고, 누군가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해하고자 해도 다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자 한다. 영화 속 게이코와 마음이 연결된 듯한 여러 인물들과도, 또 관객들에게도 게이코의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인지 어떤 것도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답답한 마음보다는 작지만 단단한 삶의 용기를 얻게 된다. 모든 것이 분명했다면 오히려 금세 휘발 되었을 여운은 그렇게 더 오래 남게 된다.
(내용을 미리 알아도 전혀 문제는 없지만 마지막 장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관객으로서의 이런 심정이 영화 속 게이코의 마음과도 겹쳐진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런 점을 게이코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체육관이 문을 닫는 날 평소처럼 강가에 나와 있던 게이코에게 누군가 인사를 건넨다. 그는 바로 마지막 시합을 치렀던 상대선수로, 지난 경기에서 고마웠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돌아가는데 그는 어떤 작업복을 입은 차림이다. 게이코가 그런 것처럼 상대 선수도 평소에는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짧은 만남을 통해 게이코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과 같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또 모든 이의 삶은 다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 순간엔 그것 말고는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게이코에겐 그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된다. 그리고 다시 강가를 거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워킹 훈련을 계속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건 꼭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함께 하는 것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위로는 아닐 것이다. 내가 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에도 나와 닮은 점이 있다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게이코는 영화의 마지막 깨닫게 된다.
(스포일러 끝)
청각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이지만 오히려 사운드 디자인에 더 큰 공을 들였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간혹 이런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사운드를 디자인할 때 더 자극적으로 청각 장애인들이 겪는 것과 동일한 조건을 관객에게 체험시키거나, 반대로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들을 강조하는 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는 후자에 가까운데 그것들이 그런 의도가 앞서지 않음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서 절제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상 속에서 매일 접하는 생활 소음들의 존재를 이 영화를 통해 발견하게 되지만, 마치 이 영화 속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그 사운드 디자인이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