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운드트랙 앨범은 영화를 보고 나서 피지컬 앨범을 구매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곤 한다. 사운드트랙의 특성상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될지 말지, 또 영화와 무관하게 사운드트랙이 좋을지 아닐지는 직접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닐을 구입하는 것이 가끔(아니 자주) 빠른 품절로 인해 쉽지 않은 일이 되면서 이런 선택 역시 일찍 강요받는 일이 많아졌다.
해외 개봉작의 경우 국내 개봉 시기가 다르다 보니 이런 경우가 더 자주 생기곤 한다. 해외에선 이미 개봉도 하고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도 하며 이미 사운드트랙 바이닐이나 CD가 성황리에 판매 중인데, 국내에선 아직 영화가 개봉 전이라 티저 예고편에 흘러나오는 짧은 음원이나 스트리밍 서비스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추후 국내에 개봉한 뒤 영화를 보고 천천히 앨범이나 다른 굿즈들도 구입하면 좋겠지만 자주 그렇지 못하다는 게 고민스러운 지점이다(실제로 이렇게 해외와 국내 개봉의 텀이 있는 경우 국내 개봉 전에는 제품을 여유있게 구할수 있었으나 개봉과 동시에 구하기 힘들게 된 경우가 많았다. 가장 최근엔 '블루 자이언트'가 그랬다).
최근 내게 이런 고민을 안겨준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다.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이 연출하고 유태오 배우가 주연을 맡은 A24제작 영화.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노미네이트 되면서 화제를 모은 작품인데, 예고편을 보니 이건 분명 내가 좋아할 만한 재질이다. 적지 않은 수의 영화를 봐오다 보니 포스터나 예고편 만으로도 좋아할 것만 같은 영화를 골라내는 선구안이 좋은 편이다. 아니, 재미없을 것 같았는데 재미있는 작품은 있었어도, 좋아할 것 같았는데 막상 별로였던 작품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패스트 라이브즈'는 좋아할 것만 같은 영화인데, 고민되게도 이 사운드트랙이 국내 정식 개봉 전 바이닐로 먼저 수입발매가 되었다.
수록곡 위주가 아닌 스코어 중심의 사운드트랙일 경우 더더욱 영화를 보기 전엔 그 호불호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앨범 구매 전 스트리밍을 통해 들어볼 수 있었는데, 마치 장면이 연상되는 듯한 (역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스코어였다. 미니멀한 구성이지만 약간의 신비함과 감정 동요를 조금 부추기는 듯한 스코어는 최근 비슷한 느낌의 인디영화들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스타일의 사운드('라이브보이 슬립스'나 '미나리' 등과 같이 몽환적이라기보다는 우주적이고 개인적이지만 그 크기가 작지 않은 느낌의)를 들려주는데, 반복이라기보다는 조금 결이 다른 줄기의 전개를 들려준다. 음의 노트 하나하나의 몽글함이 느껴지는 신비하면서도 따듯한 사운드와 서정적인 현악 사운드에 쉽게 기대고자 하지 않는 구성은 아직 보지 못한 이 영화의 분위기를 얼핏 짐작하게 한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이 글은 나처럼 이 영화를 나중에 보고 나서 부랴부랴 사운드트랙 바이닐을 구매하려 찾아봤지만 품절되어 못 구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홍보 글이다. 발매 처음부터 빠르게 품절되는 제품은 어쩔 수 없지만 개봉 전엔 천천히 여유 있게 판매되다가 개봉 직후 빠르게 품절되는 경우가 많아, 이런 류의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선뜻 미리 구매해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휘리릭 끄적여 본. 그러나 저러나 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얼른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내는 3월 개봉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