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신이 번쩍 나다

이제 모든 주도권은 너에게

by 아쉬타카
IMG_5057.JPG 곤히 잠든 하나


하나를 낳은 그 날은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하루가 금세 흘러갔다. 깨끗이 씻겨 나온 하나를 안아보고 나서야 조금은 실감이 났는데, 이후 바로 시작한 모유수유는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육아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마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가급적이면 모유 수유를 그리고 완모를 꿈꿀 텐데, 우리도 그렇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병원은 산후조리원까지 모두 모유 수유를 권장하는 병원이라 최대한 완모를 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환경이었다.


겨우 이틀이 지난 지금은 조금 여유로워졌지만, 첫날 모유 수유를 할 땐 아내와 나 모두가 정말 엄청난 고생을 했다. 아내도 모유 수유는 처음 해보는 터라 젖이 잘 돌지 않아 힘들었고, 하나 역시 처음 해보는 터라 많이 힘들어했다. 나 역시 옆에서 하나를 계속 잡아주고 젖을 잘 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했는데, 와... 이거 정말 요 근래 해본 일들 가운데 가장 진땀 나는 일이었다.


IMG_5100.JPG 체온을 유지하려면!


그렇게 몇 번의 모유 수유를 셋 다 엄청 고생하면서 마친 뒤 맞게 된 첫날밤.

이미 아직 실감도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린 채 모유 수유의 신세계를 경험한 우리는 온몸이 쑤시고 잠은 오고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잠들었던 새벽. 첫 수유 콜이 왔다.


'수유하시겠어요?'라는 간호사의 말에 비몽사몽 한 나는 너무 피곤해 잠든 아내를 한 번 돌아보고는 (그리고 동시에 내 피곤함을 확인하고는), '저,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라고 했다. 그러자 간호사가 '그럼 분유를 먹어야 하는데 한 번 분유를 먹으면 모유 수유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며 물었고, 나는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음...... 네, 이번엔 그냥 넘어갈게요'라고 했다. 간호사는 조금은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고, 곧 다시 다른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저, 이번 타임만 건너뛰시는 건지 아니면 앞으로 계속 건너뛰시는 건지 물어보려고요'. '아니면 새벽에만 건너뛰고 아침에 연락드릴 까요?'라고 묻길래 나는 일단 '네, 아침에 연락 주세요'라고 답했다.


첫 번째 수유 콜을 끊고 나서도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었는데, 두 번째 콜을 끊고 나니 그제야 아차! 싶었다. 완모를 할 거라고 그렇게 결심해 놓고는 첫날부터 피곤하다는 이유로 '다음부터 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한 것이 스스로 너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뭐랄까. 보통의 경우 충분히 준비를 하고 이제 해도 괜찮겠다 싶을 때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하게 되는데, 모유 수유 역시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은 출산을 한 날이고 아내도 나도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하니까 오늘만 딱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되겠다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이보다 나를 먼저 생각한 게 너무 미안했다.


물론 모유 수유만이 정답은 아니고, 또 완모를 아무리 원해도 산모의 상태나 아이의 건강 상태에 따라 분유를 혼합할 수 밖에는 없는 경우도 많다는 건 바로 다음 날 알게 되었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고작 내가 너무 피곤하다고 수유를 거르고자 얘기했던 게, 하나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IMG_5095.jpg 벌써부터 다양한 표정들이 쏟아진다 ㅎㅎ


그렇게 정신이 갑작스레 번쩍 들었다.

육아는 내가 충분히 준비되었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컨디션이나 계획과는 상관없이 시작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으로는 첫날 새벽 첫 수유 콜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첫날 바로 정신을 차린 탓에, 이후부터는 수유 콜이 오자마자 마치 잠을 한 숨도 자지 않았던 사람처럼 또렷한 목소리로 '네, 수유할게요!'라고 대답하고는 다시 환하게 방에 불을 켠다.


이제 내 인생의 모든 주도권은 너에게 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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