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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수 MIT간다 Aug 07. 2024

미국 백수는 달라도 달라

백수일기 #4 ㅣ 미국물 먹은 백수 라이프

    미국에 도착한 지 4일 차쯤 됐을까, 당장 사는데 필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가장 큰 문제는 상당히 심심하다는 거다. 보스턴에는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학기가 시작되기까지는 3주도 더 남았다. 시차 적응이 되긴 했는데 야행성인 나답지 않게 새벽 6시 기상 후 밤 10시에 잠드는 바람직한 패턴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한국이랑 시차가 13시간이나 나서 밤낮이 완전 반대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미국에서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새벽 6시면 거짓말처럼 말똥말똥 눈이 떠지니 새벽부터 심심함에 시달린다. 침대에 누워 뭐 할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보니 슬슬 다가오는 학교 생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도, 시사 공부도 해야 할 것 같고 운동도 좀 해야 할 것 같다.


그럴듯한 미국 백수 루틴을 만들어 보자!


첫 째, 시사 공부


나는 부동산 개발 석사 과정을 시작할 예정인데 부동산이나 자산관리는 세상 돌아가는 일과 생각보다 아주 밀접하다. 사람들이 어떤 상품에 주머니를 열고 있는지, 세계 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세계 정치가 어떤 리스크를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밝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사실 시사에 큰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니었다. 한국인인 내가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살면 한국 돌아가는 소식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부동산 소식도 업계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슈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다르다. 미국 문화에 대한 배경도 없을 뿐 아니라 특히나 경제, 정치, 소비트렌드는 나에게 너무 낯선 이야기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할 일은, Morning Brew 뉴스레터 하루에 하나씩 정독하기


Moring Brew는 한국의 '뉴닉'같이 매일 시사 뉴스를 재밌게 전해주는 뉴스레터 서비스다. 내가 알기론 뉴닉의 CEO가 미국 유학 중 뉴스레터 붐을 접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뉴닉을 창간했으니 뉴닉의 모티브가 이 뉴스레터일지도 모른다. Morning Brew는 전반적인 시사소식을 다루고 분야 별로 디테일을 다루는 뉴스레터들이 또 있는데 일단은 Morning Brew로 시작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뉴스레터를 읽는 데는 길어야 10분이었던 것 같은데 영어로 읽으려니 30분도 넘게 걸린다.


의외의 난관은 Morning Brew는 딱딱한 뉴스들과는 다르게 친근한 어투를 구사하는데 이런 은유적인 영어 표현들이 내가 이해하기엔 더 어렵다. 예를 들면, 주식시장 폭락을 CNN뉴스에서 'Stock Market has sinked to the lowest level'이라고 표현한다면, Moring Brew에서는 'After coasting for months, the stock market is looking as queasy as a trithelete after swimming in the Seine'라고 쓴다. 주식 시장이 센강에서 수영을 마친 철인 3종 경기 선수만큼이나 불편해 보인다는 말이다. 다짜고짜 파리 올림픽을 갖다 불일 줄 상상도 못 했다! 이런 표현들을 이해하느라 검색을 하다 보면 의외로 시사 공부랑 영어공부가 동시에 되니 일석이조다. 암튼 미국 백수는 매일 아침 도착하는 시사 뉴스레터를 꼼꼼하게 읽는 루틴이 생겼다.



혹시나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Morning Brew 구독 링크를 첨부한다.
https://www.morningbrew.com/daily




둘째, 영어공부


사실 영어는 생활에서 부딪혀야 는다. 오랜만에 미국에 와서 영어를 쓰니 알던 단어도 생각이 잘 안 나고 모르던 단어는 여전히 생각이 안 난다. GRE 공부를 할 때 이런 단어를 일상에서 누가 쓰냐고 툴툴거렸는데 놀랍게도 곳곳에서 쓰더라^^ 영어를 쓰면서 사는 거 말고 당장 확실한 방법은 없지만 당장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 한국 드라마를 끊고 영어드라마만 보기로 했다. (사실 굿파트너 다음화 너무 보고 싶은데 미국 넷플릭스에 없다. ㅠㅠ) 새로운 스토리를 영어로 보고 이해가 잘 안 되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예전에 봤던 드라마 중에 오래된 것들을 다시 보고 있다. 밥 먹을 때는 집중을 안 해도 잘 들리는 'Kim's convenience'를 보고 집중해서 볼 때는 'Suits'를 본다.


'Kim's convenience' 대신 'Modern Family'를 보고 싶은데 넷플릭스에서 사라졌다! 왜지? 분명 예전에 넷플릭스에서 봤었는데 말이다. 'Kim's convenience'는 한국 이민자 가족이 토론토에 사는 이야기인데 대사가 대부분 쉽고 한국 정서상 이해하기 쉬운 유머코드들이 많아서 가볍게 보기 좋다. 마블 시리즈의 샹치로 유명한 'Simu Liu'가 나온다.


'Suits'는 법정드라마인데 법정 용어도 많이 나오고 대사량도 많아서 영어 자막을 켜놓고도 정확히 이해하려면 여러 번 뒤로 돌려가며 본다. 그래서 예전에 볼 때는 한글 자막으로 속 편하게 봤었다. 하하. 영국 왕세자빈인 'Megan Markle'이 나온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고 한 참 뒤 영국 해리 왕자 결혼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기승전 로맨스인 한국 법정드라마와는 다르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재판 엎는 것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니 추천!





셋째, 하루에 운동 적어도 30분씩


나는 완전 한식파기 때문에 사실 미국에서 살찔 걱정은 안 했다. 햄버거, 피자는 많이 먹으라고 줘도 얼마 못 먹는다. 당장 오늘도 고추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그렇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얼마 없는 근육마저 사라져서 걷지도 못할지도 몰라! 갈 곳이 없어도 생존하려면 운동을 해야 했다. 한 달간 지내게 된 아파트에는 건물 안에도 헬스장이 있고, 옆 건물에 더 좋은 헬스장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방주인이 쓰는 운동 기계조차 방 안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운동을 안 할 핑계를 대려야 댈 수 없다. '그냥 스텝퍼 같은데 저게 운동이 될까?'싶은 운동기계를 10분 한 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 쟤가 문제는 아니고 내가 문제일 거야. 한 3일 타다 보니 이제 최대 20분 정도는 탈 수 있다. 그래도 하루에 30분을 채우려고 아침저녁으로 타고 있다. 한 번에 30분 타는 그날을 위해서... 파이팅...





넷째, 엑셀 공부하기


부동산 업계 일을 하다 보면 저마다 특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기획 쪽에는 숫자를 기가 막히게 다루는 사람들도 있고 공간 기획을 멋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영업 쪽에는 돈 줄 사람, 팔아줄 사람들을 잘 영업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내가 제일 자신 없는 건 숫자를 만지는 일이었다. 사실 석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크다.


그런데 숫자랑 아직 어색한 사이다. 석사에 합격하고 선수과목 리스트를 보는데 디자인 전공을 한 내가 학부 때 들은 과목은 하나도 없었다.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을 온라인 강의로 이수하면서 내 대학 생활에는 얘네들이 없었음에 감사했다. 이 수준으로도 머리가 팽팽 돌았는데 놀랍게도 이건 '기초과목'이라고 하니 석사 과목명에 줄줄이 들어 있는 'Finance'들이 무섭기만 하다.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엑셀인데... 나는 행여나 내가 망가뜨릴까 만들어진 엑셀 수식을 눌러보는 것도 공포스러워하던 사람이다. 숫자와 친해지려면 엑셀과도 친해져야 한다. 엑셀 강의를 들어볼까 하고 찾아보니 강의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아직 뭘 들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혹시 도움이 되는 엑셀 강의나 자료가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마지막, 매일 브런치 일기 한 편씩 쓰기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깨달은 게 몇 가지 있다. 먼저 나는 글을 쓸 때 '첫 째, 둘째, 셋째' 하고 번호 매기길 좋아하는 것 같다. 문학적으로 그럴싸해지는 멋진 버릇은 아닌 것 같지만 좋은 점도 있는데 그건 바로 생각 정리가 된다는 거다. 막상 늘 하던 생각인 것 같은데 이렇게 글로 옮기고 나면 떠돌던 생각들이 한데 모이고 결론이 난다. 그럼 생각이 더 선명해지고 더 실행력이 생긴다. 지금 이글도 그렇다. 요즘 '이거나 할까, 저거나 할까' 해보고 있었던 일들이 그럴듯한 미국 백수 루틴으로 정리가 됐다. 그래서 아주 바빠지기 전까지는 가능한 매일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렇게 다섯 가지 정도 루틴을 짜고 보니 그래도 하루가 좀 빠르게 간다. 미국에 오기 전 한 달 정도 부산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머물렀는데 그때는 심심한 줄도 몰랐다. 엄마랑 점심 먹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티브이를 좀 보다 보면 아빠랑 저녁 먹고 티브이 좀 보다 자고... 또 가끔 친구들이 부산에 놀러 오면 며칠이 금방 지나갔다. 혼자 낯선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확실히 심심하고 할 일을 찾게 된다. 그래도 앞으로는 할 일이 많이 생길 테니 이 심심함을 좀 즐겨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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