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리닝 할 때 한심해하던 포인트들이 내 이력서에서 보일 때의 괴리감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력서를 검토했습니다.
수많은 직무의 이력서들을 스크리닝 했고 분석했어요.
'아니 얘는 1년 넘기는 회사가 없네'
'아니 왜 3년 이상 다닌 회사가 없냐'
'2년만 되면 이직하는구나'
연차가 찰수록 스크리닝 하는 시선이 보수적이 되어
이직사유와 이직텀 같은 것을 꽤나 까탈스럽게 보기 시작했고
인정경력 또한 러프하게 검토하진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차면, 꼼꼼히 읽지 않아도 '노룩패스'에 가까운 광탈 서류들을 걸러내는 능력치가 생기더라고요.
특히나 제가 어지간하면 통과시키시지 않는 포인트는 이력에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못 견딜 포인트'는 다릅니다.
겉으론 그럴싸해 보여도 막상 내부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는, 숨겨진 것들이지요.
다 좋은데 고인 물 카르텔이 너무 완고하여 승진이 가시적이지 않다거나
내가 이곳에서 이런 일을 하다간 내 경력이 이른바 물경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도~저 히 이런 인간이랑은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하는 등.
그래서 누군가의 이직사유를 쉽게 판단해서는 안 돼요.
정말 못 버틸, 말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될 사유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14년의 경력 중 도합 7년 남짓, 세 회사의 경험은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첫 회사는 누구나 다 아는 포털이었고, 3년남짓의 경력이 있어요.
일을 꽤나 잘했다고 자부합니다. 성과도 정말 좋았고 보상도 더없이 훌륭했습니다.
퇴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쟁업체에서 팀장으로 오퍼가 왔을 정도였으니까요.
결혼을 하며 다소 먼 지역으로 신접살림을 차린 탓에 통근도 어렵고(서울의 끝과 끝이었어요)
살림만 해줬으면 하는 배우자의 요청에 3년가량을 쉬고, 첫아이를 낳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육아우울증이 정말 심하게 찾아왔더랬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아이가 두 돌쯤 되었을 때 재취업을 시도했어요.
야근이 정말 잦았기 때문에 필드로 돌아갈 수 없었고,
'4년제 상경계열 졸업+현업 3년 근무 = 사내 인사팀 채용'
이라는 엄청난(?) 조건이 있던 한 대기업 계열사인 고객센터에, 지인추천으로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차곡차곡 연수를 쌓아가며 대감집의 복지를 누려가며 일하던 어느 날,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부부의 아이이니, 양가 어른들의 도움 없이 어떻게든 둘이 책임지자며 낳은 아이들인데
이제 와서 연로하신 또 일까지 하고 계신 부모님들께 그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3년을 얼마 못 채 우고 퇴사하게 되었어요.
거기서부터 기이한 세 회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우 몇 달 쉬었을 뿐인데,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HR 필드로 돌아오기엔 너무 긴 경력단절 기간이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신입으로 입사하기엔 서른둘이라는 나이가 걸렸습니다. 지금이야 서른둘 신입도 많은데, 십여 년 전만 해도 서른둘이면 주임이나 계장정도는 달았던 시절이었어요.
다섯 개 법인에 직원들을 주기적으로 옮기며 5인 미만으로 세팅하고, 그마저도 4대 보험 신고 없이 원천세 신고만 부모님 이름으로 해주던 회사.
건설법인을 인수해 건설법인 일까지 팀원 없이 다 내게 얹더니 월급 8만 원 올리며 생색내던 제조업종 회사.
그리고 내 엉덩이 사진을 찍던, 내 서랍을 뒤지던 대표가 있던 회사까지. 그 회사 대표의 엔드라이브에 가득하던 정장 입은 여자들의 엉덩이 사진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세 회사를 겪는 동안 5년이 흘렀어요.
그리고 오롯이 내 이력서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누가 봐도 2년도 못 버티고 다닌 회사들이 세 개나 있는,
철새 같은 흔적들이에요. 변명의 여지가 없이요.
이런 이야기들을, 속 깊게 묻지 않는 한 면접 보러 가서도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회사이름이 오픈되어 있고, 직무 특성상 민감한 험담은 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있어서요.
저는 그런 이력서를 들고 덩그러니 취업시장에 나와버렸습니다.
그래서 좀 두렵고, 화가 나요.
하지만, 이겨낼 겁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과거니까요.
대신 그 회사들에서 배운 실무경험들이 저를 탄탄하게 만들어줬으니 그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경영지원 전반에 부가세신고, 결산, 나라장터 입찰, 건설법인의 각종 인사 관련 신고들과 실적신고들...
어떻게 배울 수 있겠어요, 그런 경험들이 아니었다면요!
돌아보니,
제가 그냥 탈락시켰을 수많은 이력서 중
분명 보석 같은 이들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고 깊게 스크리닝 해야지,
이렇게 경험에서 또 하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