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 속 반짝이는 내면을 표출하는 것에 대하여
버스기사 패터슨, 업무를 하다가도 가끔 어떤 생각이 떠오른 듯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일상과 시. …사실 너무나 동떨어진 것만 같고, 전혀 조화로울 것 같지 않다.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며, 시를 쓴다는 것은 현실과 떨어져있는 것 같으니까.(어떤 면에서 시란 현실에서 조금은 '벗어난' 시선을 가져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런데 패터슨은, 그 두가지의 영역 모두를,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일궈나가는 사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특별함을 기대하기도 힘든 조그만 마을의 버스기사일 뿐이지만, 그의 내면은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탐구하고 자신의 꼬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애쓴다.
패터슨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생계를 위해서 다소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의 영역을 매일매일 이끌어나가는 사람이다. 다른 일들보다도 특히나 버스기사의 삶이란, 사람들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지만 또 너무 단조로운 영역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것도 그저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어떤 특징을 깊게 파고들어, 그것을 사람들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의 어떠한 의미로 탄생시킨다.
그러한 과정은 처음에는 약간의 조소(?)를 짓게하는 정도로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일례로 담배곽에 써있는 어떤 디자인을 통해서, 특별할 것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나 가끔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나 특별함을 소리치고 싶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을(혹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착상하는 장면은 처음엔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약간 억지 아닌가 감수성이 너무 풍부하네' 이런 느낌?
그런데 그가 버스기사로서의 업무를 성실히 하면서, 마을의 폭포와 같은 곳에 앉아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면서 꼬투리 시간에 조금은 엄숙하게 시를 쓰는 것을 보면서, 어떤 면에서 슬프고 동시에 그런 그의 모습이 숭고하다고 느낄정도로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밖에 세상에 대해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 슬펐고, 그러나 그렇게라도 자신의 마음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고자 한다는 점이 멋졌다. 그런데, 그렇게 시에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담아내고자 자신의 열기를 뿜어내면서도(그 과정에서 글을 여러번 수정하고 가끔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미묘한 감동까지 느끼면서도)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를 꺼려하는 모습에서, 나는 사실 나 자신이 보였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낸 의미를 공개적으로 꺼내보여주기에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부끄럽고, 익숙치 않고 한 마음일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은 나는 그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시를 보여주고 싶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자신의 시가 인기라도 생겨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은연중에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인기가 생겨버려서 붕 뜬 기대감을 가져버리게되면 자신이 나름대로 놓치지 않고 일궈오고 있는 일상에 대한 끈을 놓아버릴까봐. 그의 버스기사로서의 꾸준하게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면 생계를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의 아내 또한 음악을 하고 싶어하며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인데, 스스로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 더더욱 그럴것이다. (아내는 그런 의미에서 항상 생기넘치고 사랑스럽지만, 패터슨을 더 애잔하게 만든다.)
그러한 면에서 그에게서 시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자신이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정말로 '세상에 드러낼 수는 없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 아이러니가, 아팠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나 자신도 사실은 패터슨과 비슷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에는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본인의 생계로,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빛나고 뜨거운 무언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그것이 별 가치 없는 것이라 애써 위안하며)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의 생계를 선택하지 않는가. 사람들마다 개인차는 있지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많은 사람은 실제론 그것을 표현해낼 용기를 내기 어렵고 때로는 너무 피곤한 일상 속에서 표현해낼 힘조차 잃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나며 열기가 담긴 알맹이같은 무엇 - 번뜩이는 통찰이 담긴 이야기, 혹은 음악 이나 그림 등으로 꺼내보이고 싶은 나의 끼나 에너지 - 등을 마음에 묻고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표현해내고자 하는 의미나 욕망도 퇴색되버린다.
패터슨의 단조롭지만 온기있는 일상. 그의 사랑이자 일상인 그의 아내는, 시의 주된 주제가 된다.
(※영화의 일부 결말 부분 내용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음을 참조바랍니다.)
그런데, 패터슨은 자신의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끈기있게 놓치지 않고 펜으로 그 열기를 끊임없이 표현해낸다. 그리고 이영화의 내가 생각하는 백미. 그것을 마침내 그래도 책으로 만들어내보자, 하는 생각을 겨우 가지게 되었을 때 어처구니없이 다 사라진다. 그 공책에는 그의 세상에 대한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과, 그런 시선 속에서 집요하게 표현해낸 여러 빛깔의 열망이 담겨있었는데, 그냥 한순간에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그때의 그의 허무한 마음을, 나 또한 허무해서 아플 지경이었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너무나 다른 의미의 두 가지 생각이었고, 그건 나에게도 어떤 의미에서 깨달음이자 앞으로도 가져가야 할 과제와 같은 것이었다. 하나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다른 이와 그 의미를 나누고 소통하고 싶다면 '하루빨리 내보이자'하는 생각. 영화에서는 개가 찢어져 버리는 어떠한 극단의 상황이었지만, 비단 그러한 상황만이 아니더라도 바쁘단 이유로, 변명과 같은 다른 상황적인 이유로, 부끄럽단 이유로 표현하지 못한 나의 열망과 열망이 담긴 작품들은, 이렇듯 어느 순간 그저 사라져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껍데기는 남아있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그 시기에, 그 때 그 펄떡펄떡 뛰던 열망과 그것이 담긴 작품을 꺼내보이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내가 후회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또다른 생각으로는, 그것들이 다 찢어져 없어져 버린대도, 세상에 대한 그의 살뜰한 시선과, 그 시선으로 글 속에 담은 그의 마음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란 것. 우리가 평소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평일, 그 평범함도 무의미하고 그저 흘려보내는 것만은 아니란 것. 자신이 어떤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자신이 좀 더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특별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는 일상 속에서 아내에게 감사함,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시에는 그 마음을 더 절절히 표현한다 …
패터슨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여 시를 만들어내, 그 시를 자신의 비밀노트에만 적어왔다. 그 비밀노트가 세상에 보여지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자체로 그에겐 의미있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놓치지 않고 풀어낸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고백,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외침,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의 세상에 대한 영롱하고 수줍은 고백..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순간과 그런 생생한 기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평일은, 일상은 또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가 시를 써오며 단련되었을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시각이나 섬세한 촉수, 그리고 조금 더 정교해진 자신의 언어들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지막에 그가 "Ah-ha"하는 가벼운 탄식을 내뱉으며 무언가를 깨달았던 것으로 보였듯, 그가 다시 시를 쓸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패터슨과 같은 사람들과 나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처럼 일상의 현실 속에서도 나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시선을 가끔은 정교하게 다듬으며 이를 글과 음악으로 가끔은 표현하며 살아갈 것임을 조용히 다짐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일상이 항상 반짝반짝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갈 때 내가 더 행복할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