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의도는 달성하였으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열렬한 미완성.
"색, 계(lust, Cation)"는 이름에서도 헤아려지듯 성적인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였지만, 내게는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항일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그녀(극중 '왕치아즈', 탕웨이)의 처절하고 치열한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서 슬프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들의 동침 장면이 왜그리 회자되었는지가 너무나 이해가 갔다. 관계 장면이 시각적으로 노골적이라 각인이 되는 것도 있지만, 그들의 관계와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
그녀의 임무는 간단하지만 어려웠다. 그(극중 ‘이', 양조위)가 자신을 믿게 만들고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 미인계든 뭐든 자신이 가진 모든걸 활용하고 시간을 들여 그가 자신을 믿고 사랑하게 만들고, 그가 경계를 풀게끔 하여 처단하는 것.
그녀는 시간을 들여 그를 유혹하고, 결국 그와 잠자리를 갖게 된다. 그녀와 그의 첫 성관계는 강압적인 것 그 자체였다. 그렇게 관계를 맺는 그의 성향도 작용했겠지만, 고위 관료직으로서 통제하는 게 익숙한 환경적인 영향도 있었을테고 그녀를 향해 쌓인 욕망을 정상적인 방식으로 풀 수 없다보니 강압적인 형태로 분출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의 관계들은 집요하고 뜨거웠으나, 그녀를 통제하는 방식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던 그('이')는 그녀를 믿고자 하듯 그녀의 육체를 집요하게 탐구했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던 그는 미친 사람처럼 내면의 작은 족쇄조차 풀어버리고 그녀를 자유로이 탐했다. 그의 표정은 그 순간까지도 무표정하고 외로웠으나 그의 몸은 미친 사람처럼 움직였다. 그래서 그의 움직임은 야하기보다 처절했다. 반면, 그를 믿게끔 해야 했던 그녀는 그의 움직임대로 복종했으나, 그의 욕망과 열정, 그리고 그 안의 처절함에 압도되었던 것 같다. 그녀 또한 지금 그와 같이 외롭고 처절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묘한 동질감과 연민도 느낀 것 같다.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녀 또한 자신의 나라와 가족 - 자신의 삶을 파괴시킨 무리에 대하여 복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처절함이 있었기에.
그가 처음 그녀에게 반했던 모습은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 당돌함이었다. 그도 그럴듯이 그녀가 처음 복수의 연극에 뛰어들었을 때는 복수심과 치기로만 가득 차, 그 열정어린 모습은 순수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 작전이 실패하고 3년 뒤, 다시 그 무대로 돌아온 그녀는 켭켭이 쌓인 생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안고, 다시금 복수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피운다. 그녀의 3년 전과 후의 모습을, 그는 모두 알기에 그녀에게 더욱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3년 전에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없는 '두려움이 없는' 당차고 영특한 모습에 반했고, 3년 후에는 나를 닮은 내면의 외로운 얼굴을 발견했기에, 그녀를 탐닉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까지 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그들의 섹스는 서로를 발견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처절한 대화였다. 어차피 그들은 길게 대화하며 사랑을 키워나가기에도 어려운 환경이자 시기에 놓여있었기도 했지만, 그들은 육체를 탐하며 서로를 믿고자 하게 되고, 자신과 닮은 상대를 연민하게 된다.
그녀는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었기에 자기가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그를 차마 죽게 내버려 두지는 못하게 된다. 그를 처단하는 계획된 그 순간까지 그녀는 그래도, 그를 처리하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연극을 끝내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까지도 껴안으며 그녀에게 사랑과 확신을 주고자 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같았다. 그를 배신하는 것이 더 괴로웠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만 살려낸다. 그 또한, 그녀가 자신을 처단하고자 하는 의도로 다가왔음을 알게되지만 결국엔 자신을 사랑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음을 알게될 것이다. 그들의 사랑으로만 바라보자면 그들은 결국은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래서 슬픈 이야기였다. 서로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으나 사실은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애초에 지켜낼 수 없는 사랑이었다는 것이.
그리고, 사랑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연극으로만 유지될 수 있었던 그녀의 삶도 슬펐다. 더군다나 그 연극은 '성공적인' 연극이 되지 못한다. 대의를 위한 연극으로 시작한 그녀의 삶은 결국은 의도치 않은 실화로 마무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연극(그를 사랑하는 척 하는 연극)은 그녀의 실화(그를 사랑하는 것)가 되었기에. 그리고 연극의 전개(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잘 흘러갔으나 연극의 목적(그를 처단하는 것)은 결국 달성하지 못하고 종료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