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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리타, 짧지만 의미있는 찰나의 시간

죽음과 존재, 무기력과 생존을 교차하는 생의 한 가운데

by 나봄

강변의 무코리타 - 오기가미 나오코


1. 무코리타, 짧지만 의미있는 찰나의 시간

무코리타 연립주택.

그곳에서는 남편을 잃은 여자와 자식을 잃은 남자,

그리고 아끼는 존재를 잃은 자에게 필요한 물건을(비석) 파는 남자가,

아버지를 ‘제대로 갖지도 잃어보지도 못한’ 그(다케시)가 아버지를 잘 떠나보낼 수 있게 돕는다.


그들은 저마다의 상실을 조용히 아파하다가 다른 이들에게 위로받으며 흘려보낸다. 그렇다고 다른이의 상실의 부분을 채워낼 순 없다. 어떤 존재도 누군가의 상실의 모양과 질감 그대로를 다시 채우진 못하며 이해하지도 못한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해나가다가도 상실을 인식하며 때때로 공포나 죄책감이나 외로움에 떤다. 그러다가도, 그를 애도하며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고 다른 이들과의 시간으로 온기를 찾는다. 같이 밥먹고, 노동하고, 자연 가운데 쉬면서. 그리고 가끔은 조금씩 자기의 이야기를 털어내고 상대가 털어낸 이야기에 이따금씩 아파하면서. 그리고 상대의 안위와 일상에 관심을 갖고 격하게 간섭(?)하듯 돌보면서.


그렇게 애정어린 마음으로 나의 일상에 간섭하는 사람들과 섞이다보면 어느새 산뜻한 미소가 깃든다. 그리고 나의 상처도 조용히 애도하며 스스로가 보듬어낼 힘이 생긴다. 전혀 그러하지 않을 것 같던 잡초마저 꽃을 피워낸다.


그렇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시간,

그리고 잃어버린 그 사람이 나에게 새긴 존재감과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 영화에서의 “무코리타”, 짧지만 의미있는 시간이 아닐까.


2. 유골, 죽음이자 존재 모두를 보여주는 실체. 유골을뿌리며 제대로 이별하다.

영화속 다케시는 어릴 적 헤어져 알지도 못했던 아버지의 유골을 받고 이를 버리지도 품지도, 떠나보내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곁에 둔다. 가끔 구역질을 하며 공포감마저 느낀다. 반면, 집주인 미나미는 죽은 남편의 유골을 집 안에 두었다가, 남편이 못견디게 그리울 때는 그의 유골을 온몸으로 ‘느낀다’. 유골이 실제로 손으로 만져지는 물체와 같은 실체였기에 다케시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게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미나미에게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손에 잡히는 남편의 애틋한 실체였을 테다.


그러다 다케시는 결국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자신의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되 자신이 아버지의 그늘을 닮지는 않을 것이라는 용기를 얻으며 아버지를 제대로 떠나보낸다.(유골을 직접 뿌린다.) 이제 그에게 유골은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흩뿌릴뿐. 그리고 그 장례식에는 무코리타 친구들이 함께 노래하고 애도한다.



3. 오징어 젓갈. 무기력과 생존력은 묘하게도 양면이 붙어있다.

다케시는 오징어젓갈을 만드는 노동을 한다. 노동의 댓가로 음식을 사서 먹고, 덤으로 받은 오징어젓갈을 먹으며 살아간다. 오징어젓갈은 그에게 돈벌이 수단이자 노동, 그리고 섭취-즉 생존의 수단이다.

오징어 젓갈은 흐물한 모양으로, 무기력하고 고독한 사람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고독사를 한 아버지의 죽음을 묘사하는 다케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이웃은축 늘어진 오징어젓갈을 차마 먹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다케시는 갓 지은 쌀밥에 오징어젓갈을 비벼, 이웃과 공유하며 함께 맛있게 먹는다. 그렇게 무기력함을 이기고 노동하며 생존한다.

오징어젓갈이 무기력함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생존의 수단인 것처럼 다케시 또한 무기력의 굴레에서도 열심히 생존해낸다. 그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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