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기에,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임을 떠난 연대와 사랑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 이미랑
1. 가족이기에 누구보다도 조건없이 사랑하며, 동시에 누구보다도 폭력적이다.
가족이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도 받아들인다. 자신이누렸던 것 만큼은 누리기를, 자신보다 더 고생하지 않기만을 걱정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끔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족을 품고 걱정한다. 세상 그 어떤 관계에서도 받을 수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내어준다.
하지만 가끔은 그 무조건과 무질문이 독이된다. 나의 가족을 그 사람 자체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타인에 대해 하는 것보다 훨씬 덜 기울인다. 마치 가족끼리는 그럴 필요가 없는 듯이. 사실은 가족도 타인임에도, 종종 그 사실을 잊고 자신의 생각을 당연히 투영하며 그 생각과 행동 양식을 따르지 않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한다.그렇기에 때론 아무 관련없는 타인보다도 더 폭력적인공격을 할 수도 있다.
여자(민애)는 자신의 딸이 여자를 사랑하고 함께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 어쩌다 잠시 자신의 딸(그린)과 그녀의 애인(레인)과 함께 살게 된다. 오랜 시간 함께한 둘의 단단한 관계를, 어떤 가족들보다도 믿고 의지하는 둘의 관계를 같은 공간에서 느끼면서도, 둘을 철저히 ‘무시한다’. 그 어떤 가벼운 질문에도 답하지 않으며,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아침을 함께 먹겠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으며 둘이 무슨 관계인지 묻지 않는다. 아니, 묻지 못한다. 엄마인 그녀의 고요한 무시 속에 딸(그린)과 그녀의 애인(레인)은 이제는 이미 익숙하지만 가족이기에 더 차갑게 다가오는 폭력에 조용히 몸을 떨었을 터다.
그린 또한,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당연시하게 받으며 그것을 당연히(!) 이용한다. 오랜만에 찾아와 대출해달라고 조르거나, 계획이 무산되자 자신의 애인을 데리고 집에 들어와버린다. 같이 조화로이 살기 위해 맞춰가고 싶은 노력 또한 없다. 엄마니까 살짝 눈치보이더라도 가능한 일이다. 엄마의 수고스러움과 불편함은 (가족이기에) 실은 금세 무시한다. 오히려 애인 레인이 제3자의 입장이지만 엄마를 배려하고 함께하려 노력한다. 그린이 레인을 향해 “(눈치보이더라도) 조금만 참고 살자.“ 라는 말에 레인은 말한다. ”우리만 참는거야?“ 라고.
이처럼 엄마 민애와 딸 그린은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지지하나, 동시에 소위 “남보다 못한” 사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나 그 장면들을 보며 나의 어떤 순간과 가족이 나에게 했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했던 행동들이 당연한 것이었나, 가족이니까 당연히 겪어야 했던 가족의 행동들이 당연한 것이였나 생각하게 하는 순간들을.
2. 가족이 아니지만 그를 위해 분노하고 울며 싸운다.
엄마 민애와 딸 그린은 닮았다.
자신이 애정하는 누군가에게 그가 가지는 당연한 권리가 침해당할 때, 그의 삶의 역사와 현재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할 때, 그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어떤 가십거리나 콘텐츠로만 소비될 때 그들은 ‘가족처럼’ 그를 위해 분노하며 싸운다. 그 사람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 민애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 할머니가 요양 병원에서 존엄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가족에게 생긴 문제인 것처럼 같이 수치심을 느끼고 분노한다.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병원측과 싸운다. 젊은 시절 아이들을 돌보고 지원하는 데 희생한 할머니의 빛나는 삶의 궤적이, 병원과 방송가로부터 경제적 수단이자 이야기를 만드는 콘텐츠로 이용당하고 버려질 때, 함께 아파한다. 또, 결국은 죽음을 코앞에 둔 마지막 그 때에마지막 따뜻한 기억을 함께한다. 시간과 공간을 나누며, 그저 함께한다. 어떤 댓가도 없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인이 참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한다.
딸 그린 또한, 자신이 일하는 대학의 강사이자 친한 선배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강단에 서지 못하게 되자 그를 위해 문제 제기하며 싸운다. 대학에서는 그녀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일터를 빼앗고 방송가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자극적인 콘텐츠로 소비하고자 찾아온다.그런 그들에게 그린은 선배 대신 더 크게 소리치며 화내고, 묻는다. 뭐가 그렇게 문제냐고, 당신들이 선배의 권리를 뺏고 조롱할 이유는 없다고.
3. 그들은 묻는다. 가족임의 여부를 떠나, 이해관계를 떠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아껴주고 지지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설사 그들에게 이해가 안되는 지지와 사랑이라 하여 공격받을 이유는 없다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 질문이라도 해보자고. 레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엄마에게, 그리고 그린은 선배를 취재하러 나온 기자들에게 묻는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 물어나 보겠다고. 그런 그들의 물음에 아무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꺼이 그들과 시간을 함께한다. 가족이나 다른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이 아님에도, 누구보다 그가 편안하길 바라며 시간과 공간을 내어준다. 그것을 수고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그저 함께한다. 그것이 사실은 누군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쉬운 일이자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