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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May 01. 2022

완벽한 봄날의 피크닉

룩아웃 마운틴과 스토리텔링의 힘

매일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따듯하고 화창한 봄날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오랜만에 김밥을 싸서 피크닉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며 김밥을 잔뜩 만들어서 절반은 김밥을 좋아하는 이웃집 리즈네 부부에게 덜어주고 나머지 절반은 도시락 통에 담아 조지아 북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조지아와 테네시에 걸쳐있는 룩아웃 마운틴으로 집에서 2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처음에는 제법 막히던 길도 교외에 이르자 조금씩 한산해져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드라이브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처음 도착한 곳은 조지아 쪽 룩아웃 마운틴에 있는 록 시티 가든으로 등산과 수목원이 결합된 듯한 느낌의 정원이다. 새순이 돋아나 싱그러운 나무로 둘러싸인 산길은 이름대로 온통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 돌길과 바위틈으로 걷는 재미도 있고 드문드문 보이는 꽃들을 보며 봄기운을 만끽할 수도 있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독일계라 독일 민담에 나오는 땅속 요정 Gnome 인형들을 곳곳에 가져다 두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맛도 있다.


§ 록 시티 가든 입구와 일곱 개의 주를 볼 수 있다는 표시석. 여기서 테네시, 조지아, 버지니아, 앨라배마, 켄터키,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가 보인다고 하는데 거리를 생각하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다만 시야를 가리는 고층건물이나 높은 산이 없이 탁 트여있어 각 주가 있는 모든 방향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아슬아슬한 흔들 다리와 뚱뚱한 사람은 짜부라진다는 적나라한 이름의 Fat Man's Squeeze라는 비좁은 바위틈 등을 지나면 록 시티 가든의 상징인 폭포와 Lover's Leap을 만날 수 있다. 신기하게도 어디에 가나 절벽에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얽혀 있는 것 같다. 아프지 않은 사랑을 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가 보다. 그러나 애절한 이름과는 별개로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은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시원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물줄기가 어디선가 불어온 부드러운 바람과 함께 더위를 식혀준다. 완벽한 봄날의 피크닉이다.


§ 폭포 위의 절벽이 Lover's Leap이고 오른쪽은 흔들 다리이다. 다행히 흔들 다리 옆에는 돌다리도 있어서 나처럼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돌다리로 건너도 된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배려이다.


폭포를 돌아 나오면 가든의 마지막 코스인 Fairytale Cavern 이 나타난다. 동굴이 많은 이곳의 지형을 살려 동굴 곳곳에 동화를 재현해 놓아 지나가면서 다양한 동화 속 장면을 볼 수 있도록 꾸며놓은 곳이다. 백설공주나 빨간 망토 같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동화도 있고, 미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낯선 동화들도 섞여 있다. 어두운 동굴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여러 가지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는 재미에 긴 동굴도 순식간에 끝난 듯하다.


§ 동굴의 여러 동화 속 장면 중 하나인 신데렐라의 신발 분실 사건. 이 외에도 모든 동화 속의 가장 극적인 장면들이 꾸며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을 것 같은 곳이다.


한편 록 시티 가든에서 10분 정도 거리의 테네시 쪽 룩아웃 마운틴에는 루비 폭포가 있다. 이곳은 개인 관람은 불가능하고 가이드와 함께 투어 하게 되어 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선 후 이곳을 처음 발견한 레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비디오 관람을 마치면 투어가 시작된다. 동굴 자체는 한국의 종유 동굴들에 비해 아주 대단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관람로의 천정이 낮아서 그런 듯도 하고 이미 익숙한 풍경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구불구불 비좁은 동굴을 한참 가다 보면 거짓말처럼 갑자기 엄청난 높이의 거대한 공간이 등장하고, 동굴의 가장 안쪽에서는 루비 폭포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거센 물줄기를 쏟아낸다. 루비 폭포의 수원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니, 어쩌면 이곳은 지금도 여전히 제2의 레오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미국의 동굴들 중 최초로 전기 시설을 갖추었다는 루비 폭포는 곳곳이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다. 현재 이 조명들은 모두 태양에너지로 전기를 공급받는다고 한다.


사실 레오의 이야기는 대단한 내용이 없다. 어느 날 동굴 안이 궁금해서 탐험을 하던 레오가 힘든 과정을 거친 후 폭포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인데, 거기에 인간의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 로맨스 등을 잘 녹여내어 그럴듯한 이야기로 탄생시켰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는 사람은 부른다.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매혹적이고 달콤하게. 그래서 이 작은 동굴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모양이다. 스토리텔링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해 준 루비 폭포를 뒤로 하며 나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아닌 마음을 끄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지루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만 되어도 성공일 것 같다. 나의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게 우선은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 아무도 관심 없던 동굴을 기어가 폭포를 발견한 레오처럼 두려움을 떨치고 새로운 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멋진 이야기가 탄생할 것임을 나는 믿는다.


§ 레오는 이 폭포를 발견한 후 자신의 아내의 이름 따 루비 폭포라고 이름 지었다. 아내에게는 이보다 더 로맨틱한 선물은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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