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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Dec 22. 2021

두 바퀴로 유랑하는 자유

애틀랜타 벨트라인에서 자전거 타기

동네 친구가 생겨서 좋은 점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반가운 것은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취미가 자전거인데 아직 짐이 도착하지 않아 못 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침 자기 집에 사놓고 타지 않는 자전거 두 대가 있으니 빌려가서 우리 자전거가 도착할 때까지 마음껏 타다가 돌려주란다. 우리는 신이 나서 한 동안 집 근처의 자전거 트레일을 열심히 달렸다. 집 근처에도 예쁜 트레일이 많아서 매일 즐겁게 타다가 오늘은 왠지 먼 곳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마침 누군가가 알려준 애틀랜타 벨트라인이 떠올라 그곳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애틀랜타 벨트라인은 애틀랜타 시를 한 바퀴 빙 둘러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라고 하기에 우리의 둘레길 정도를 상상하고 길을 나섰다. 어라?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길이 끊겨있다.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다 마침 조깅을 하는 사람이 있기에 물어보니 벨트라인이 아직 다 이어진 게 아니어서 중간중간에 길이 끊겨 있다고 한다.


§ 애틀랜타 벨트라인 지도. 위 지도는 예상도로 2023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는 웨스트사이드와 이스트사이드만 완성된 상태이다. 이곳에서는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기 때문에 자전거가 없는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자전거를 즐기듯 애틀랜타에 여행오는 사람은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방향을 돌려 다시 달리기 시작했는데 조금 지나자 애틀랜타 벨트라인 이스트사이드 트레일에 본격적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트레일에는 산책이나 조깅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고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트레일 양 옆으로 루프탑 브루어리나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 카페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는데 듣기로는 맛집이 많다는 것 같다. 한편 간간히 등장하는 벽은 그라피티로 채워져 있어 젊고 힙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길이 잘 포장되어 있고 풍경이 예쁘기도 해서 우리는 기분 좋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차를 가져와서 맥주를 못 마신 게 너무 아쉬워 조만간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파란 하늘 아래서 라이딩을 즐긴 후 루프탑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며 땀을 식히면 정말 온몸의 피로가 다 날아갈 것 같은데, 다음엔 천상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기어코 맥주를 마셔봐야겠다.

§ 애틀랜타 벨트라인에는 트레일 이용 시 주의사항 등이 적힌 표지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군데군데 그려진 그라피티 중에는 한창 화제가 되었던 <오징어 게임>도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국위선양을 위해 애쓰는 영희가 대견해 사진으로 남겼다. 한편 애틀랜타 벨트라인에는 맛집이 많아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Nina & Rafi>라는 디트로이트 피자집을 갔다. 디트로이트 피자는 처음 먹어 보는데 도우가 폭신하고 소스는 달착지근하면서도 매콤해서 굉장히 맛있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걷기는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전거는 두 바퀴로 유랑하는 자유가 아닐까. 걷기는 깊이 있으나 조금 느린 감이 있고, 자동차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빠른 속도 탓에 많은 것을 스쳐 보내야 한다. 자전거는 풍경을 놓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빠르면서 지루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느리다. 나는 페달의 속도에 맞추어 때로는 격렬히, 때로는 차분히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본연의 나로 돌아간다. 그리고 온몸을 감싸는 햇살과 시원한 바람. 모든 상념을 앗아가는 자유가 두 바퀴 위에 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가 좋다.


두 바퀴로 달리면 어디라도 즐겁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에서 낯선 풍경을 마주하며 길을 넓혀갈 때 즐거움이 더 커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애틀랜타 벨트라인 위를 달리며 앞으로 미국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풍경을 상상했다. 그곳이 어디든 두 발과 두 바퀴로 온전히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계속해서 발을 굴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 고프로로 촬영한 애틀랜타 벨트라인 이스트사이드 트레일.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흔들리게 찍었다고 거짓말하고 싶으나 사실 고프로를 제대로 장착하지 못해서 많이 흔들렸다. 내 자전거가 오면 제대로 다시 장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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