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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Feb 01. 2022

스포츠 그릴에서 미식축구 즐기기

너무나 미국적인 환상의 짝꿍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원래 TV를 잘 보지 않아서 한국에 있을 때도 없었고, 미국에 온 이후에도 넷플릭스나 Tubi정도만 보면서도 큰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으니 스포츠 중계를 볼 수 없다는 것. 나는 원래 스포츠에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어서 지금껏 아쉬움을 못 느꼈으나, 마침 우리가 이곳에 온 후 애틀랜타가 야구도 우승을 하고 조지아 주립대학이 대학 풋볼에서도 이겨 버리자 왠지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처럼 TV를 볼 수 있는 펍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스포츠 그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길을 지나다니면서 <스포츠 그릴>이라는 간판을 봤을 때는 저기가 뭐하는 곳인가 싶었다. 스포츠도, 그릴도 알겠는데 스포츠 그릴은 또 뭐람. 알고 보니 스포츠 그릴은 스포츠 중계 관람 전용 펍 같은 곳이었다. 마침 일요일에 내셔널 풋볼 챔피언십의 준결승전이 있으니 우리는 여기서 미식축구를 관람하기로 했다.


§ 우리가 갔던 스포츠 그릴 <Hammerheads Seafood & Sports Grille>은 맥주와 간단한 안주, 식사류를 판매한다. 맛도 나쁘지 않은 편. 가게에는 수십대의 TV가 설치되어 있고 TV마다 다양한 스포츠가 흘러나오고 있어 원하는 중계를 마음껏 볼 수 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그야말로 천국 같은 곳.


벽을 가득 메운 TV에서는 미식축구뿐 아니라 농구, 아이스하키, 체조 등 동시간대에 하는 모든 스포츠 중계가 다 방영되고 있었다. 마침 4대륙 피겨 스케이팅 대회가 나오는 TV도 있어서 풋볼이 쉬는 시간에 차준환의 경기도 챙겨볼 수 있었다. 한편 스포츠를 볼 때는 응원하는 팀이 있어야 재미있는데 우린 미국에 연고도 없고 애틀랜타는 진즉에 떨어져 응원할 마땅한 팀이 없기에 그냥 동네 친구 제니퍼의 고향인 캔자스시티를 응원하기로 했다. 마침 지난번 경기 때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다 연장전까지 가서 종료 3초를 남기고 이기는 쫄깃한 경기를 보여줬던 터라 기대감이 크기도 했다. 오늘 우리의 상대팀은 신시내티이다.


§ 미식축구의 룰을 극단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하면 4번의 시도 안에 10야드를 전진하는 것. 위 사진에서 보면 파란색 선에서 노란색 선까지 공을 들고 가든 던져서 패스하든 4번 안에 가기만 하면 성공이다. 이렇게 10야드씩, 10야드씩 전진해서 터치다운을 하면 6점 득점. 다른 득점 룰도 있으나 다 생략하면 대략 이런데, 한 번에 얻는 점수가 크기 때문에 큰 점수 차이로 이기다가도 순식간에 따라 잡힐 수 있어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미지 출처는 Illumin Magazine.


미식축구는 룰을 모르고 보면 덩치 큰 남자들이 한데 엉겨 붙어 치고받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룰을 파악하면 굉장히 재미있다. 오늘의 경기는 초반 3:21로 캔자스시티가 크게 앞서 낙승을 예상했는데 후반부터 슬슬 밀리더니 급기야 연장전까지 가서는 27:24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가게 안에 신시내티 팬이 많았는지 조금씩 점수차를 좁힐 때마다 가게가 들썩들썩했는데, 마침내 역전승을 거두자 다들 가게가 떠나가라 소리치며 기뻐했다. 우린 조용히 테이블에 앉아 썩은 표정으로 맥주를 홀짝였고.




누군가가 말하기를 미식축구야말로 가장 미국스러운 스포츠라고 한다. 남성미를 한껏 발산하는 스포츠라 그런 듯한데 육체적 강인함을 추구하는 미국과 잘 어울리기는 한다. 스포츠 그릴도 미국적인 장소인지 동양인은 우리 빼고 한 테이블 있었는데 - 말투로 보아 인종만 아시안인 미국인들 같았지만 - 그나마 남자들이어서 동양인 여자는 나뿐이었다. 때문에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낯선 곳으로 여행을 온 기분이었는데, 스포츠 역시 그 나라 문화의 일부이니 이런 방식으로 미국을 즐겨보는 것도 색다르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한편 집에서 본 또 다른 준결승전(샌프란시스코 대 로스앤젤레스)도 우리가 응원하던 샌프란시스코의 패배로 끝났다. 나는 오랜 한화 팬이던 남편에게 당신의 저주가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따라왔다고 투덜거리며 결승전은 남편과 다른 팀을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펍이고 직관이고를 떠나서 스포츠를 가장 재밌게 보는 방법은 이기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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