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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Jan 29. 2022

당신의 태도는 얼마입니까?

미국의 팁 문화에 대하여

미국의 문화 중 가장 적응되지 않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팁 문화가 단연 으뜸을 차지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 얼마의 팁을 지불해야 하는지 알쏭달쏭해서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대략 어느 정도 지불하는 것이 무난하다 정도의 답은 얻었으나 아무도 명확히 답을 해주지는 못했다. 팁의 기준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애초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어쨌든 간단히 정리하자면 식당의 경우 점심은 15%, 저녁은 20% 정도가 무난하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물가와 함께 팁도 많이 올라서 점심도 18~20%까지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분개하는 글도 가끔씩 눈에 띄기는 한다. 여하튼 대체로 식당이나 미용실, 택시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보통 15~20% 정도를 팁으로 지불하는 것 같다. 다만 서빙도 테이블 정리도 스스로 해야 하는 패스트푸드 점에서는 팁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럼에도 카운터에는 팁을 넣는 유리병이 있거나 카드 서명시 팁을 선택하라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물론 당황하지 않고 노 팁을 선택하지만.


그런데 얼마 전 방문한 타코 음식점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곳은 음식은 가져다 주지만 소스 등은 손님이 직접 챙겨 와야 하고 테이블 정리도 스스로 해야 하는 패스트푸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헷갈리는 가게였다. 나중에 지인에게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는데, 돈을 먼저 지불하는 가게들은 대체로 팁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어쨌든 이 음식점은 돈을 먼저 지불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처음 가게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치우고 있길래 패스트푸드 점이라고 생각을 해서 팁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하게 메뉴를 설명해 주던 카운터 직원이 내가 노 팁을 선택하자마자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무뚝뚝하게 영수증을 건네주었다. 나는 당황하며 테이블에 앉아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건지 계산대에서의 상황을 한참 동안 곱씹었다. 그런데 암만 생각해도 내가 공짜밥을 먹은 것도 아닌데 음식값을 다 지불하고도 불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팁 문화의 가장 큰 단점은 상대방의 친절을 믿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분명 팁을 떠나 인간대 인간으로, 또는 직업정신을 발휘해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많을 텐데도 위와 같은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상대방의 웃음이 가면으로만 느껴진다. 간혹 팁을 지불하는 대신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 하지만 그 말은 역설적으 팁을 내지 않거나 적게 내는 경우 불친절해도 된다는 핑계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득 몇 번이나 문제가 되었던 <스타벅스>에서의 인종차별이 떠오른다. 만일 <스타벅스>가 팁을 받는 곳이었다면 눈을 찢으며 동양인 손님을 조롱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조차 팁의 여부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팁 문화의 단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 애틀랜타 근교 알파레타에 있는 <스타벅스> 점원이 한국인 손님의 컵에 그려놓은 인종차별적인 그림과 <스타벅스>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빅토리아 윌리엄스의 일러스트. 이렇게 대놓고 고객을 조롱할 수 있는 대담함과 무식함이 놀라우면서도, 팁을 지불해 이런 불쾌하고 모욕적인 경험을 피할 수 있다면 몇 푼 쥐어주고 끝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팁에는 받은 돈만큼만 친절하겠다는 직원의, 그리고 너 하는 거 봐서 얼마를 줄지 결정할게라는 손님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매번 지불하면서도 껄끄럽다.  이미지 출처는 각각 AsAmNews.com과 The DePaulia.


당연히 받아야  대우나 존중에는 대체 얼마의 가격을 매겨야 적당할? 아니, 애당초 그것들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 태도가 하나의 상품으로 환원되는 순간 친절의 진짜 가치는 한없이 퇴색된다. 돈을 지불하고 상냥함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나에게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입 안이 씁쓸하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 오늘도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려 무난한 값으로 친절을 산다. 그래도 저 미소가 전부 가짜는 아닐 거라 믿으며.

   



팁 문화는 과거 유럽에서 왕족들이 다른 귀족의 성을 방문했을 때 시중들던 하인들에게 수고비를 주던 관습에서 기원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혁명을 통해 계급구조가 무너지면서 팁 문화도 함께 사라졌는데, 유럽을 모방했던 미국에서는 팁 문화가 사라지지 않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미국인들도 팁 문화를 싫어하는데 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아서 없애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사실 서비스직 종사자는 누구나 태도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고 있기는 하다. 임금이라는 간접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를 통해서. 팁이 불편한 것은 친절과 대가의 관계가 지나치게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인 것 같다. 모든 관계는 은근해야 매력인데. 언젠가 미국의 팁 문화도 그 의도를 한 꺼풀 안으로 숨겨 조금 더 고상한 방향으로 발전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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