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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Jan 18. 2022

혐오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날

내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직장 때문에 그 지역으로 이사 기 때문에 당시엔 그곳의 지리를 전혀 몰랐는데, 어느 날 퇴근 후 어디를 갈 일이 있어서 처음으로 통근버스를 타게 되었다. 길도 익숙치 않은 데다 통근 버스 노선도 모르니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알 수 없어 기사님께 물어볼 요량으로 운전석 뒤에 앉았다. 그런데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운전기사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디 감히 직원 주제에 앞자리에 앉느냐는 거였다. 내가 길을 몰라서 그렇다고 해명을 했지만 기사는 아랑곳 않고 앞자리는 교수 자리이니 직원은 맨 뒤에 앉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렇게 버스 뒷 좌석으로 쫓겨난 후 나는 다시는 통근버스를 타지 않았다.


이 일을 떠올리면 1960년대에 흑인 지정석에 앉기를 거부했던 로자 파크스가 생각난다. 내가 통근버스 뒷 좌석으로 쫓겨난 것은 믿을 수 없겠지만 2000년대의 일이다. 40년이 더 흘렀음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로자 파크스처럼 부당한 일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꿈꾸었던 세상이 여전히 요원함을 의미한다. 오늘은 1월 셋째 주 월요일로  <마틴 루터 킹의 날>이다. 킹 목사는 애틀랜타 출신으로 그의 생가와 교회, 그의 업적과 미국 인권운동사를 기리는 <National center for civil and human rights> 등이 모두 애틀랜타에 있다. 나는 오늘 <마틴 루터 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립인권센터를 찾아갔다.


§ 기념 센터는 총 세 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서는 킹 목사의 연설문 친필 원고나 저작물을 볼 수 있고, 2층에서는 미국 인권운동사 관련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3층에서는 세계 인권 관련 전시물을 볼 수 있는데, 현시대의 독재자로 김정은 사진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기념관은 아담하고 전시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흑인들이 현재의 권리를 누리게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희생과 수많은 운동가들, 그리고 이름 없는 시민들의 노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2층 전시실 입구로 들어서면 인종 분리자들의 사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사람과 사람을 나누고 차별하자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그들을 보며 저들의 혐오는 어디서 기원하는지 궁금해졌다. 우월감? 혹은 불안함? 아니면 이유 없이 그냥 싫은 것일까? 나는 혐오는 열등감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를 자기 아래에 둠으로써 자신의 위치가 높아졌다고 착각하고 안도하는 케이스를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내게 소리친 그 운전기사는 교수의 권위를 빌려 나를 쫓아내면서 자기에게도 휘두를 눈곱만한 권력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을까? 여하튼 트럼프의 지지자 중 다수가 저소득, 저학력 백인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열등감이 혐오의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혐오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어서 딱 하나만을 꼽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더 알아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무지와 무관심 역시 아주 소극적인 형태의 혐오이기에 우리는 좀 더 다가가야 한다. 내 안의 숨은 혐오와 상대방의 감추어진 아픔을 향해. 때문에 오늘의 이 발걸음이 내게는 그저 색다른 하루의 나들이 이상을 의미한다.


Freedom is never given ; It is won
- A. Philip Randolph

인권센터의 벽에는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필립 랜돌프의 문구가 쓰여 있다. 하지만 쟁취해야 하는 것이 자유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평등한 사회, 관용 있는 태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자세 등 모두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킹 목사의 연설을 다시 떠올려야만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져서 너와 내가 동등한 존재임을 모두가 깨닫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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