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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Mar 25. 2022

유물들의 속삭임이 가득한 박물관에서

스완 하우스와 애틀랜타 역사 센터

햇살 좋은 3월의 어느 날 지난번 북클럽에서 읽었던 <Swan House>의 배경인 저택을 보기 위해 애틀랜타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100년쯤 전에 지어진 이 저택은 애틀랜타의 부촌인 벅헤드에 위치해 있는데, 원래는 Inman 가족의 소유였으나 이후 애틀랜타 역사 협회가 매입해 관리하고 있다. 스완 하우스 바로 옆에 역사박물관이 위치해 있어 티켓을 구입해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이 집은 영화 <헝거게임>의 촬영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저택과 정원 모두 상당히 크고 관리가 잘 되어있어 천천히 둘러보며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저택 내부의 가구와 집기들도 화려하고 고풍스러워 구경하는 맛이 있지만 대부분의 유명 저택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다만 건물 외부의 특징적인 분수가 유독 눈을 사로잡는데, 소설에서 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 분수를 묘사한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 위의 사진은 <헝거게임>에 나오는 스완 하우스의 전경. 럭셔리한 고급 맨션인 이 저택은 계단 중앙의 다섯 개로 이루어진 캐스캐이드식 분수가 가장 유명한데 계단 앞 잔디밭이 출입금지라 밖에서는 분수를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때문에 2층 창문을 통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편 스완 하우스 옆으로 2~3분만 걸으면 레스토랑 <Swan Coach House>에서 미국 남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 식당은 생일파티 같은 행사 예약이 많아서 주말에는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가기 어렵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는 주중에 방문을 해서 많이 기다리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 분위기가 고급스러워서 많이 비싸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합리적인 가격에 맛도 훌륭해서 놀랐다. 찰스턴의 <미들턴 플레이스>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뭐랄까 박물관 레스토랑들이 숨은 맛집이었나 보다. 이 레스토랑은 기념품샵과 연결되어 있어서 식사를 마치고 아기자기 예쁜 소품들을 구경하기도 좋다.


§ 우리는 쉬림프 앤 그리츠와 조지아 복숭아 소스가 들어간다는 치킨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쉬림프 앤 그리츠는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는 메뉴이고, 치킨 샌드위치 역시 소스와 고기와 빵의 삼박자가 아주 잘 어울리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한편 시그니처 메뉴인 <The Bubbly Atlatan>이라는 칵테일도 함께 주문했는데 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히비스커스를 사용해 상큼하면서도 달콤해 맛있었다.


스완 하우스 관람을 마치고 애틀랜타 역사박물관으로 돌아와 한 바퀴 둘러보았다. 박물관은 미국 원주민사, 남북 전쟁사, 흑인 인권사, 민속사, 생활사 등의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박물관 전시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체로키 인디언과 크릭 인디언이 주로 살았었다고 한다. 미국 원주민 역사를 잘 알지 못해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우리의 고분과 유사한 거대한 봉분 같은 유적이 있어 놀랬다. 백인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되지 않았다면 그들만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남북 전쟁사 섹션에는 연도별로 전쟁의 진행상황과 당시 무기, 군복 등이 전시되어 있고, 민속사나 생활사 섹션에는 애틀랜타 시민들의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생활사 쪽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국어 포스터와 한복도 전시되어 있어 괜스레 반가웠다.


§ 애틀랜타 역사박물관 중 남북 전쟁사와 조지아 주의 미국 원주민사 섹션. 위에 언급한 섹션들 외에 애틀랜타 올림픽 섹션도 있어 관련 전시도 함께 볼 수 있다. 한편 박물관 기념품샵에도 조지아 주와 애틀랜타 관련 소품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개중에는 내가 읽은 책 <Swan House>도 있었다. 작가도 애틀랜타 출신이고 작품의 배경도 이곳이라 같이 판매하는 모양이다.


박물관은 지루하고 정적인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그럼에도 박물관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어딘가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유리 부스 안의 유물들은 기나긴 세월을 망토처럼 두르고 조용히 앉아 관람객들을 기다린다. 오로지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말을 거는 유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자 투명한 유리창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유물들의 속삭임으로 가득해 외로울 틈 없는 박물관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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