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스크 Mar 27. 2022

봄은 분홍빛으로 온다

메이컨에서 벚꽃 축제 즐기기

나에게 봄은 두 가지로 시작된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성부장님의 <입춘대길> 문자이고, 또 하나는 벚꽃. 둘 중 하나가 빠지면 어째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에 있어도 벚꽃은 봐야 한다. 그래야 진짜 봄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 유명한 워싱턴 DC의 벚꽃을 보고 싶지만 며칠 후 그랜드 캐니언 여행이 예정되어 있기에 도무지 워싱턴까지 다녀올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벚꽃을 아예 안 볼 수는 없으니 아쉬운 대로 메이컨의 벚꽃 축제를 보러 가기로 했다.


메이컨은 집에서 남쪽으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소도시이지만 도시 전역에 30만 그루 이상의 벚나무가 있어 해마다 성대하게 열리는 벚꽃 축제로 유명하다. 최근 2년 간은 코로나로 인해 축제가 중단되었으나 올해 다시 재개된다는 소식에 기대를 품고 찾아갔다. 그런데 주 중반에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 때문인지 이번 주에 절정일 거라던 예측과 달리 벚꽃이 완전히 만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볕이 잘 드는 곳의 나무들은 가지마다 꽃잎들이 풍성히 매달려 온통 세상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벚나무가 공원 같은 특정 공간에 집중적으로 심겨 있어 산책하며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메이컨의 벚나무들은 도시 곳곳에 산개해 있다. 때문에 거리상 걸으며 볼 수는 없어 축제의 주최에서 배포하는 지도를 보며 트레일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방식으로 꽃구경을 해야 한다.


§ 메이컨 시에서 배포하는 벚꽃 트레일 지도. 처음에는 이 지도를 보고 어떻게 운전을 해서 찾아가나 싶었는데 길 이름을 보며 가니 어떻게든 따라갈 수는 있었다. 길 이름에 익숙지 않은 우리도 문제없이 찾아갔으국인들은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운전을 하며 구경을 하니 아무래도 한국처럼 풍성한 꽃길 아래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이렇게 보는 것도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인 것 같아 나름대로 즐거웠다. 한편 다운타운에는 음식이나 소품을 파는 장터가 열렸는데 사람들이 잔뜩 몰려 구경을 하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이 축제는 핑크색으로 꾸미고 오는 것이 룰이라 우리도 옷장을 뒤져 핑크색 옷을 찾아 입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장터에는 분홍색 옷으로 한껏 봄 분위기를 낸 사람들이 가득하다. 듣기로는 강아지 털까지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오는 극성맞은, 또는 영혼을 담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모양이다. 우리도 덩달아 분홍색 티셔츠를 챙겨 입고 장터에서 수제 초콜릿과 벚꽃향 그린티 티백을 사서 한 손에 들고 걸으니, 아직은 쌀쌀한 초봄의 바람에도 마음만은 이미 봄의 한 복판에 가있는 기분이다.


§ 분홍색으로 만개한 벚꽃들과 세상에서 가장 핑크 핑크한 축제를 알리는 홍보 간판. 메이컨 거리는 분홍색 꽃과 분홍색 리본을 단 집들과 분홍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해서 홍보 문구대로 세상에서 제일 분홍색 도시가 되어 있었다. 한편 장터에서 시음해 본 체리 블러썸 그린티가 달콤하니 맛있어서 기념으로 하나 샀다. 우리는 차를 많이 마시니 여기서 지내는 동안 잘 마실 것 같다.


언젠가부터 핑크색이 공주병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 핑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늘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주변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분홍색으로 꾸밀 수 있는 도시가 있다는 것이 반갑다. 모두가 이토록 화사해지니 아무리 새침데기 봄이라 해도 안 오고 배길 수 없을 것 같은 곳이다. 메이컨뿐 아니라 내 마음도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으니 어서 빨리 찾아와 주었으면. 벌써부터 발그레하게 들썩이는 마음에 달콤한 벚꽃 향이 번져간다.


§ 차에서 잠깐 내려 걸어본 벚꽃길. 새들도 봄이 반가워 즐겁게 지저귀는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물들의 속삭임이 가득한 박물관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