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셋째 주 월요일은 토머스 제퍼슨의 생일을 기리는 대통령의 날이라 미국의 공휴일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귀넷 카운티에서는 둘째 주 목요일과 금요일도 휴일로 지정해 대통령의 날을 연휴로 즐길 수 있는 배려를 해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연휴이니 당연히 학교도 쉰다. 그렇다면 집에만 있을 수는 없지. 어디로든 떠나야겠다. 급하게결정한 여행이라먼 곳으로 가기는 어려워서 그나마 가까운 서배너와 서배너 북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까지 돌아보기로 했다.
서배너를 가기로 했으니 혹시 힐튼헤드 아일랜드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해변이 있지 않을까 하는생각에 인터넷을 좀 뒤져 보았다. 예상대로 서배너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타이비 아일랜드(Tybee Island) - 새해 전야에 불꽃놀이가 열렸던 그 섬으로 힐튼헤드 아일랜드와도 가깝다 - 도 해변에서 라이딩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우리는 차에 자전거 두 대와 짐을 바리바리 싣고 서배너로 떠났다. 동쪽으로 네 시간 반을 내리 달려 타이비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시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해변 근처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둘러 자전거를 조립한 후 해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서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라 마음이 급했기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자전거를 타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길가의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기껏 가져온 자전거를 타보지도 못하는 건가 싶어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갑자기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다시 개기 시작했다.
§ 갑자기 쏟아져 내린 소나기 덕분에 만난 예쁜 무지개.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다.
타이비 아일랜드는 힐튼헤드 아일랜드보다는 많이 작지만 한산하기도 하고 바닷가 모래도 단단해서 자전거를 타기 좋다. 해변 군데군데 고인 바닷물에 푸른 하늘이 그대로 비쳐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쪽 지방이라 2월인데도 바람이 차갑지 않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시원하게 울려 퍼진다. 두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의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해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마치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은기분이다.
§ 해변 곳곳에 바닷물이 고여 있는데 깊지는 않아서 물 위로도 걸을 수 있고 자전거도 탈 수 있다. 땅과 바다와 하늘이 모두 푸르른 시원한 풍경.
타이비 아일랜드의 해변은 별로 길지 않아서 북쪽 해변에서 남쪽 해변까지 자전거로 왕복 하는데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짧은 거리여도 기분 좋게 라이딩을 즐겼지만 좀 더 제대로 자전거 타는 기분을 느끼려면 힐튼헤드 아일랜드로 가는 편이 좋겠다. 한편 우리가 주차를 한 북쪽 해변 근처의 Jaycee Park는 화장실이 깨끗하고 넓어서 걸레를 물에 적셔 자전거에 묻은 모래를 대충이라도 닦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해변 라이딩은 렌털 자전거로 즐겨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레임도 체인도 모래 범벅이 되어서 손질이 만만찮게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중한 자전거로는 잘 포장된 자전거 전용도로에서만 달리는 걸로.타이비 아일랜드에도 힐튼헤드 아일랜드에도 해변에 자전거 렌탈샵이 많으니 바닷가에서 시원한 라이딩을 즐기고 싶은 분들은 도전해 보시기를!
§ 고프로로 촬영한 라이딩 동영상을 간략하게 편집해봤다. 파도 위를 달릴 때는 드론으로 촬영한 것처럼 실감 나게 찍혔다. 그런데 지금 보니 뒷 일을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신나게 달려서 자전거가 모래 범벅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신이 나도 뒷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원래 이 자전거를 한국에서 가져올 때는 미국에서 실컷 타고 돌아가서 새 자전거로 바꿀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자전거로 미국에 오기 전 남한강(인천~충주)과 북한강(팔당~춘천), 강원도(속초~영덕)을 종주했고 미국에 와서도 여러 여행을 함께 할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많은 추억을 함께 나눈 친구 같은 자전거가 앞으로의 여행에도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버텨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