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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플랜테이션과 다크 투어리즘

바람과 함께 사라진 영화들

by 더스크

찰스턴을 방문하기 전 영화 <노트북>을 본 김에 이 지역과 관련 있는 다른 영화들도 좀 보고 싶어 졌는데, 제일 보고 싶은 영화는 아무래도 조지아와 연관이 깊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하도 어릴 때 봐서 몇몇 인상 깊은 장면들만 기억나는데, 그중 하나가 남북전쟁 후 집안이 몰락한 스칼렛이 찰스턴에서 사업에 크게 성공한 레트 버틀러에게 돈을 빌리러 가는 장면이다. 스칼렛은 초라한 행색을 감추려고 커튼을 뜯어 새로 드레스까지 만들어 입고 버틀러를 찾아 가지만 고된 밭일로 거칠어진 손을 미처 감추지 못해 거절당하고 만다. 비록 한 장면에 불과하지만 찰스턴이 나오기도 하고 조지아에 사는 동안 한 번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해 온터라 이참에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서비스 목록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찌 된 일인가 알아보니 이 작품이 노예제도를 미화한다는 비판이 있어 넷플릭스의 제공 목록에서 삭제했다는 모양이다. 잘못된 역사는 그냥 지워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걸까? 그런 관점이라면 찰스턴을 비롯해 남부 지역에 관광지로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플랜테이션들부터 먼저 없애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수 없이 영화를 보지 못한 채 떠난 찰스턴 여행에서 나는 두 곳의 플랜테이션을 방문했다.


먼저 영화 <노트북>의 촬영지로 유명한 분홀 플랜테이션(Boone Hall Plantation)이다. 스패니시모스가 늘어진 참나무 터널 아래를 자전거를 탄 노아와 앨리가 신나게 달리는 장면을 여기서 찍었다. 그만큼 참나무 터널이 아주 멋지고 농장 주변의 강 풍경도 근사하다. 농장이 상당히 큰데 트랙터가 끄는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둘러보는 투어를 제공하고 있어 무한정 걸어야 하는 수고를 그나마 덜 수 있다. 저택 내부도 투어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 분홀 플랜테이션의 저택과 유명한 참나무 터널. 실제로 보면 굉장히 로맨틱하다. 이 플랜테이션은 예뻐서 그런지 <노트북> 외에도 드라마 <남과 북>, 영화 <퀸> 등 다양한 작품의 촬영지로 사용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농장 노예들의 거처를 박물관처럼 만들어 보존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농장 입구부터 저택이 있는 곳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참나무 터널 바로 옆에 노예들이 살던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당시에는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농장 앞에 노예들의 오두막을 만들어 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오두막들은 과거 노예들의 생활부터 현시대의 흑인 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까지 다양한 내용들을 전시하고 있다.


§ 노예들의 오두막은 보통 나무로 짓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벽돌로 지어져 있다. 분홀 플랜테이션에는 한때 85명에 이르는 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대농장이다.


다른 한 곳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어 그냥 한 번 들러봤는데 너무 예뻐서 놀랬던 미들턴 플레이스(Middleton Place)이다. 잘 정돈된 정원에는 붉은 동백이 만발해 있고 들판에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어 마치 천국 같은 풍경이다. 맑은 연못 물에는 푸른 하늘과 나무 그림자가 거울처럼 비친다. 이곳의 정원은 하늘에서 보면 나비 모양처럼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땅에서는 형태를 잘 알아볼 수 없다. 한편 이 농장은 영화 <패트리어트 - 늪 속의 여우>에서 영국군 장교가 머물던 곳으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정원의 전경을 더 잘 볼 수 있다.


§ 미들턴 플레이스의 저택 앞에서 풀을 뜯는 양들의 목가적인 풍경. 정원과 농장 주변을 흐르는 강의 풍경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운데 사진으로는 잘 잡히지 않는다. 아래의 동영상은 꽃 터널을 지나 저택으로 이르는 길.


다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돌아가 보자. 이 두 농장의 아름다움이 부당하고 가혹한 노예제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농장 투어를 없애자고는 말하지 않는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다크 투어리즘처럼 무엇이 이 작품의 문제인지, 또한 시대정신과 비판의식을 결여한 예술 작품이 추후 어떻게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게 되는지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감상하고 토론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속한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후대의 시각에서는 비합리적이고 편협해 보일 수밖에 없다. 훌륭한 작가라면 이를 뛰어넘는 통찰력과 문제의식을 지녀야 하는데 마가렛 미첼은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실 마가렛 미첼은 특별히 노예제를 옹호하던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인식에 갇혀 살던 사람일 뿐. 물론 예술가는 우리 같은 평범한 소시민들과 달리 한 시대를 생각 없이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시대의 한계를 지녔다는 이유로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마저 모조리 부정당하는 것 역시 옳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현대의 관점으로만 작품을 판단해 아예 영화를 서비스 목록에서 제외시킨 넷플릭스의 결정이다. 결국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유튜브에서 유료 결제를 하고, 한글자막이 없으니 무려 4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영어와 씨름을 해가며 봐야 할 모양이다. 더 이상은 이런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작품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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