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분명 60살이 되어도 신나게 놀겠다고 다짐했건만 매직킹덤에서 하루 만에 방전된 체력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이래서 다들 젊어서 놀라고들 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두 개의 테마파크만 예약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로 향했다. 아바타가 있는 애니멀 킹덤과 스타워즈와 토이스토리가 있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다가 나는 역시 귀여운 게 취향이라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택했다. 신데렐라 성을 보자마자 들떴던 매직킹덤과 달리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테마파크에 들어가서 밀레니엄 팔콘과 스타워즈 행성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보니 또다시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주로 가족단위 손님이 많았던 매직킹덤과 달리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성인이 압도적으로 많고 놀이기구도 좀 더 다이내믹하다. 이곳 역시 가장 인기가 많은 <Star Wars>와 <Slinky Dog Dash>는 입장과 동시에 예약 마감이라 <Mickey and Minnie's Runaway Railway>를 예약해 놓고 나머지는 줄을 서서 타야 했다. 어제 롤러코스터에서 호되게 당한 탓에 이번에는 사전에 놀이기구의 레벨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탔다. 다행히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놀이기구는 대체로 실감 나는 영상을 보면서 무언가를 쏘아 맞추는 종류가 많아서 겁먹지 않고 즐길 수 있었다. <Millennium Falcon>과 <Star Tour> 모두 그런 종류라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하는 내 수준에 딱 맞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아 재미있었다.
§ 너무나 반가운 3PO와 스타워즈 테마공간인 Galaxy's Edge. 매직킹덤은 미키와 미니로 무장한 사람들이 많은데 반해 여기는 광선검을 든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귀여운 스톰 트루퍼와 베이비 요다 인형이 탐나서 한참 망설였지만 미국에서의 짐을 늘리지 말자는 생각에 꾹 참고 돌아섰다.
한편 토이스토리 공간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어서 외계 행성에서 장난감 나라로 순간 이동을 한 기분이 든다. 알록달록 알전구와 귀여운 장난감들이 가득한 사이로 신나게 달리는 <Slinky Dog Dash>를 보고 있으면 무서워도 한번 타보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물론 생각만 하고 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 <Toy Story Mania>를 탔는데 팔이 빠지도록 총을 쏜 보람도 없이 정작 얼마 맞추지는 못해 아쉬웠다. 한편 예약 시간이 되어 별 기대 없이 탄 <Mickey and Minnie's Runaway Railway>가 너무 재미있어서 놀랬다. 왜 스타워즈 다음으로 인기가 있는지 알겠더라.
§ 왼쪽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가장 무섭다는 <Twilight Zone Tower of Terror>인데 당연히 안 탔다. 오른쪽은 보자마자 신이 나서 어깨춤이 절로 나는 토이 스토리 테마공간. 구석구석이 귀여운 캐릭터로 가득해서 장난감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다.
어제 매직킹덤에서 너무 에너지를 쏟은 탓인지 오후가 되자 발이 아파 더 이상 돌아다니기가 어려웠다. 날은 한여름처럼 더운데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다리로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하니 지치는 게 당연하다. 한 걸음만 더 걸어도 발이 부서질 것 같아 디즈니고 뭐고 빨리 숙소로 돌아가 수영이나 하며 쉬기로 했다. 디즈니월드 리조트에 묵으면 30분 일찍 입장할 수 있고 예약도 먼저 열리는 등의 혜택이 있지만 워낙 일찍 만실이 되는 탓에 대부분은 근처의 다른 리조트에 묵는다. 우리 역시 디즈니 리조트에 방이 없어 디즈니월드에서 20분 정도 거리의 리조트인 <Grande Villas Resort>에 머물렀는데, 가성비가 꽤 좋은 리조트로 2개의 수영장이 딸려 있는데다 수영장 바로 옆에는 온수가 채워진 자쿠지도 있어 수영을 하다가 추워지면 자쿠지에서 몸을 녹일 수 있다.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뻐근했던 허리와 다리의 근육통도 한결 나아지는 듯하다.
§ 해질 무렵의 리조트 풀장. 이 리조트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조리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리조트에서 아침식사를 만들어 먹고 나와서 비싸고 맛없기로 유명한 디즈니월드에서 식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오른쪽 사진은 디즈니월드에서 이틀 동안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치킨 와플. 매직킹덤에 있는 <Sleepy Hollow> 매장에서 먹었는데 매콤 달콤해서 느끼하지 않고 아주 맛있다.
지금이 디즈니월드 가기 딱 좋은 나이라고 호기롭게 외쳤건만 역시나 기력이 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젊은 사람들은 오전/오후로 나누어 하루에 테마파크를 두 군데씩 가기도 한다는데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20대 때도 그런 에너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 체력 부족이 비단 나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범위 내에서 최대한 즐기는 수밖에 없으니, 어딜 가든 남들보다 좀 덜 보더라도 더 신나게 놀아야겠다. 뜨끈한 물에서 노곤해진 몸을 침대에 누이니 지난 이틀간 디즈니월드에서 보낸 시간들이 마치 오래전 읽은 동화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오늘 밤 꿈속에서 그 마법 같은 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마녀의 저주에 빠진 것처럼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