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월드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올랜도에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탬파가 있으니 집으로 가기 전 잠깐 들러 보기로 했다. 디즈니월드에서 나이를 잊고 뛰어 노느라 많이 지쳐 있었기에 탬파에서는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선은 크리스털 리버에서 카약을 타보기로 했는데 듣자 하니 여기서 매너티도 많이 볼 수 있다고 해서 내심 기대가 컸다. 카약은 처음 타 보는데 특별히 어렵지는 않아서 별도의 강습 없이도 바로 탈 수 있었다. 우리는 카약 업체에서 준 지도를 따라 크리스털 리버를 거슬러 올라간 후 매너티를 보기 좋다는 <Three sisters> 근처에 카약을 묶어 두고 스노클링을 하며 매너티를 찾아다녔다. 3월인데도 한여름처럼 더운 날씨라 스노클링을 하니 시원해서 기분도 좋고, 이름처럼 강물이 맑고 투명해서 수영하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암만 헤엄을 쳐도 매너티는 눈에 띄지 않는 데다 오리발 없이 수영을 하니 앞으로 잘 나가지도 않아서 카약 반납 시간을 생각해 적당히 배로 돌아와야 했다. 다시 열심히 노를 저어 돌아가는데 사람들이 우리 배 바로 아래 매너티가 있으니 노를 멈추라고 외쳤다. 매너티 보호를 위해 주변에 매너티가 있으면 반드시 노를 멈추고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노를 멈추고 물속을 들여다보니 거대한 매너티가 유유히 헤엄쳐 지나가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매너티의 등짝만 봤다고 하는 것이 맞겠으나 그래도 어쨌든 아예 못 본 것은 아니니 그게 어디냐고 위로하며 돌아왔다.
§ 카약의 노를 젓는 것은 오리배를 타는 것처럼 약간의 육체노동이 따르지만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갈 때는 시원하고 기분이 좋다. 그런데 강이 깊지 않아 중간에 한번 내렸다가 남편의 조리가 강바닥에 박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번 여행은 나의 선글라스에 이어 여러모로 데미지가 크다. 결국 남편은 미국의 천 원 샵인 <달러 트리>에서 1달러짜리 조리를 사서 신고 다녔고, 나는 20달러짜리 아동용 선글라스를 사서 끼고 다녔다.
한편 클리어워터 비치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기만 했다. 미국의 해변에는 책을 읽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그들처럼 누워 책이나 읽으며 휴식을 취했다. 다만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선블록을 바르고도 플로리다의 강렬한 햇살을 이기지 못해 이미 양팔에 두드러기가 가득 올라온 나는 햇빛이 닿으면 타 죽는 드라큘라처럼 꽁꽁 싸매고 그늘로 숨어들어야 했다. 한편 점심으로 햄버거와 함께 맥주를 한잔 들이켠 남편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가 더위에 잠이 깬 후 스노클링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 클리어워터 비치의 투명한 바다. 파라솔과 썬 베드를 빌려 책을 읽다가 졸리면 낮잠도 자고 더우면 물놀이도 하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오른쪽은 요즘 읽고 있는 소설 <Daisy Jones and The Six>
해가 기울자 우리는 좀 걷기도 하고 저녁도 먹을 겸 해변에서 빠져나와 탬파 시내로 향했다. 탬파 시내의 리버워크가 노을을 보며 걷기도 좋고 주변에 맛집도 많다는 얘기를 듣고 일부러 찾아갔는데 휴일 저녁이라 그런지 주차장에 자리도 없고 주차비도 말도 못 하게 비싼 데다 유명한 식당들은 이미 예약이 모두 마감되어 갈 수가 없었다. 어딜 가나 쉬는 날에는 관광지는 피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해가 막 넘어가기 시작한 강변의 하늘은 시시각각 짙은 남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낮의 더위도 시원한 바람을 타고 저 멀리로부드럽게 물러가서 기분 좋은 저녁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한편 주변에서 적당히 찾아 들어간 화덕 피자집도 생각보다 맛이 있어서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 일몰을 보며 산책하기 좋은 탬파의 리버워크. 운이 좋으면 여기서 돌고래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낮에는 한여름처럼 덥던 날씨가 저녁이 되자 선선해져서 걷기에 딱 좋았다.
미국에 온 지도 넉 달이 넘어간다. 여전히 반년이 넘은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줄어가는 날짜를 보면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인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을 와서도 쉬기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일정을 소화하는 날이 많았기에 탬파에서나마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충전을 마쳤으니 이제 또 다른 계획을 세워 봐야겠다. Terra Incognita, 미지의 세계를 향해. 아직 밟아보지 못한 땅이 너무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