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미국 서부를 여행하는 경우 샌프란시스코를 가장 많이 찾지만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애리조나와 유타에 걸쳐 있는 그랜드 서클이라 남쪽에서 이동하는 것이 훨씬 가깝기에 나는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해 LA를 향해 위로 올라가는 쪽을 택했다. I-5도로는 우리나라의 7번 국도처럼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길게 연결되어 있는데, 여러 도시를 거치는 만큼 <I-5 도로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의 리스트 같은 것도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해 먼저 위의 I-5 관광 명소 소개에 빠지지 않는 <발보아 공원>에서 여행의 일정을 시작했다.
<발보아 공원>은 동물원, 미술관, 스페인 빌리지, 극장, 정원 등으로 이루어진 공원으로, 공원만 둘러봐도 하루가 다 갈 정도로 아주 거대하다. 그럼에도 질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건물이 아주 이국적인 데다 열대 나무들과 어우러진 아름답고 독특한 풍경에 끊임없이 눈을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주황색 기와를 얹은 건축물과 예쁘게 꾸며진 정원은 스페인 남부 도시 말라가나 그라나다를 떠오르게 한다. 바닥을 알록달록한 타일로 꾸며놓은 스페인 빌리지에서는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어 특별한 기념품을 마련하기도 좋다. 한편, 공원 한쪽에는 일본식 정원도 있는데, 미국 여러 도시에 작게나마 일본식으로 정원을 꾸며 놓은 곳이 많은 것을 보면 역시 서양사람들의 일본 사랑은 대단함을 새삼 실감한다.
§발보아 공원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아기자기한 스페인 빌리지. 자전거 거치대마저 귀여운데 공원이 전체적으로 다 예뻐서 사진찍기에 좋은 곳이 많다. 한편 이젤에 올려진 프리다 칼로의 초상화가 바닥의 타일과 잘 어울린다. 일본 정원은 유료 입장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거리상 여기서 일본을 가기는 쉽지가 않으니 더 이색적으로 느끼는 듯하다. 예쁘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라 대단한 감동은 아니었어도 초록 잎사귀들 사이로 산책을 하니 기분까지 싱그러워진다.
발보아 공원을 다 보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탓에 나는 정원만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서둘러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반나절이 넘게 지나있었다. 다음 장소는 <USS 미드웨이 박물관>으로 처음에는 굳이 봐야 할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항공모함을 언제 타볼까 싶기도 하고, 영화 <미드웨이>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참고로 이 다큐멘터리는 나의 최애 작품 중 하나로 아직 안 봤다면 강추한다. 이 항공모함은 1945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하다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부에 전투기 조종 게임도 갖추고 있고, 갑판에는 실제 전투기와 헬리콥터 등도 여러 대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남자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곳으로, 조종실 투어를 할 때는 너도나도 조종석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내부는 온통 좁고 가파른 사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를 어떻게 뛰어다니며 전쟁을 했을까 궁금하다. 한편 항공모함의 길게 뻗은 활주로를 보고 있으니 영화 <미드웨이>의 급강하 폭격 장면들이 떠오르며아찔했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어딘지 늠름해 보이는 전투기와 항공모함. 박물관 바로 옆 공원에서는 퓰리처상을 받은 그 유명한 사진을 거대한 동상으로 만들어 놓은 <Embracing Peace>를 볼 수 있다. 종전의 기쁨을 이보다 역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우크라이나에도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와 모두가 환희에 가득 찬 포옹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미드웨이 박물관의 다음 일정은 원래 코로나도 해변에서 일몰을 보는 것이었는데, 막상 바닷가에 갔더니 온통 구름이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냥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한편 샌디에이고 숙소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 식사도 한 끼 밖에 하지 않아 맛집 정보가 크게 없다. 그래도 한 끼만 먹는 만큼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미슐랭 가이드와 샌디에이고 관광 안내에 공통으로 올라있는 멕시칸 식당 <Puesto>을 찾아갔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주 훌륭한 맛이었다. 블루콘으로 만든 검은 토르티야가 독특한데 특히 퀘사디아기 따듯하고 바삭해서 입에 잘 맞았다. 라임향이 향긋한 마르가리타도 식사와 잘 어울리는 상큼한 맛. 캘리포니아 남쪽은 멕시칸 음식이 맛있으니 많이 먹고 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겠다.
§Puesto의 독특한 검정 토르티야. 새우 타코, 필레 미뇽 타코, 치킨 퀘사디아를 주문했는데 셋 다 끝내주는 맛. 3달러를 내면 무한 리필 나초칩을 주기 때문에 약간 적게 주문하고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참고 : 샌디에이고의 베스트 멕시칸 식당 미슐랭 가이드
긴 일정의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 무리하지 않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5시간의 비행에 3시간의 시차가 더하니 피곤함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푹 쉬며 제대로 충전해서 활기찬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은 이만 굿 나잇.